한국은행 창립 제74주년 기념사"섣부른 완화기조 선회로 인한 정책비용 더 클 것""인플레이션과의 싸움, 섬세하고 균형있는 판단 필요"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은행의 역할 강조
  •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창립 제74주년 기념사에서 "섣부른 완화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최근 인플레이션 흐름에 대해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세,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위험이 커진 데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너무 늦게 정책기조를 전환하면 내수 회복세 약화,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시장불안을 초래할 수 있고, 너무 일찍 전환하면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늦어지고 환율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통화정책과 함께 수행해야 할 과제도 언급했다.

    그는 "계획했던 대로 8월부터 반기에서 분기 단위로 세분화된 경제전망을 발표해 분석능력을 제고하고 시장과의 소통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금통위원의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전망에 대한 견해를 공개하고 있는데, 위원들과 함께 이러한 방식의 효과와 장단점 등에 대해 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양도성 예금증서(CD)금리 대신 실거래 기반의 무위험지표금리(KOFR)를 준거로 하는 금융상품 거래를 장려해 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유효성을 제고하고 관련 파생상품시장의 활성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또 "은행·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 대한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유동성 지원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한은이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적극 제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출생·고령화,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고갈과 노인빈곤, 교육문제, 소득·자산불평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그간 누증되고 심화되어 온 여러 구조적 문제들 앞에서 우리의 연구영역을 통화정책의 테두리 안에만 묶어둘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기후위기, 인공지능 혁신 등에 따른 사회 대전환을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력 없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행이 구조개혁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고 정부 및 유관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며 우리나라 최고의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 구성원들을 향해 "때로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똑똑한 이단아'가 되어 한국은행의 혁신을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은 지식의 소비자나 중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각 분야의 프론티어에서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