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세계 반도체 장비 3분의 1 구매4대 장비사 상반기 매출 절반 중국에서 첨단 칩 막히자 자동차·PC용 칩 등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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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도 높은 반도체 산업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을 여전히 휩쓸고 있다. 규제에 막힌 첨단 반도체 대신 레거시(범용) 반도체 시장을 파고드는 전략을 펼치면서 4대 장비사도 중국으로 먹고 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2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의 장비 구매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장비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도 글로벌 4대 장비사들의 중국 매출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일본 장비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이 미국의 중국 제재로 반사이익을 크게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일렉트론은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7~9월)에 중국에서만 매출의 49.9%를 거뒀다고 밝혔다.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호실적을 기록한 대표적인 이유가 중국향 장비 매출이었다. 지난해 같은기간 도쿄일렉트론 전체 매출 중 중국 비중은 4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올해 꾸준히 증가세를 나타냈다.세계 유일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인 네덜란드 ASML도 올들어 최대 고객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기존 최대 고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과 TSMC를 보유한 대만이었는데 불과 1년 만에 대세는 중국으로 기울었다. ASML은 올 2분기 중국에서 매출의 49%를 올렸다고 밝혔다.심지어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도 중국이 없으면 사업이 안되는 수준이다. 반도체 웨이퍼 검사 장비 선두주자인 미국 KLA는 올 6월 분기에 중국 매출 비중이 44%를 기록했을 정도다.미국 최대 장비 기업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도 올 2분기 총 매출의 43%가 중국에서 나왔다. 한국과 대만 비중이 각각 15%씩임을 감안하면 중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중국 매출 비중은 22%포인트 증가했다는 점도 눈 여겨봐야 할 대목이다.램리서치(Lam Research)의 올해 6월 분기 매출 기준으로 중국 비중은 39%였다. 반도체 웨이퍼 식각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는 램리서치 또한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장비 기업이다.이처럼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꾸준히 큰 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기대감은 거의 없었다. 미국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기로 하면서 일시적으로 중국이 장비 사재기에 나서는 것이지 제재 이후에는 사실상 중국향 장비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었다.하지만 중국은 올해도 글로벌 주요 장비 기업들의 매출 1순위에 오르면서 여전히 왕성하게 반도체 장비를 구비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만큼 중국 정부가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을 계속해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셈이다.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장비 3분의 1을 싹 쓸어갈만큼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미국이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이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를 자극했고 글로벌 장비시장에도 더 막강한 구매 파워를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미국이 18나노 이하 공정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 칩 등 첨단 반도체 분야에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은 미국이 건들이지 않은 레거시 반도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나섰다. 첨단 반도체 개발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자동차, PC용을 포함해 레거시 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임을 고려할 때 중국은 이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겠다는 목표로 미국에 맞서는 것으로 해석된다.특히 유럽처럼 반도체 자급률이 낮고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지역을 집중 공략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반도체 생산기지를 자국에 유치하는 경쟁에 함께 뛰어들긴 했지만 인프라나 인력 문제에서 발목이 잡혀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중국은 앞으로도 유럽과 같은 지역에서 레거시 반도체 수요가 여전하겠지만 그 수요를 충족할만한 자급력을 갖추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 시장에 공세를 더하기 위해 장비 등의 생산설비 확충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