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3년 간 '기술통' 면모 못살려공격적 파운드리 투자 실책트렌드 못 읽고 AI시장 지각반도체 수장 대거 교체한 삼성式 위기탈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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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부활을 위해 돌아왔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끝내 사임했다. '기술통'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퇴출된 모양새다.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AI칩으로 요동치는 가운데 국내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 1일(현지시간)자로 인텔 CEO직과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새 CEO가 임명되기 전까지는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수석 부사장이 임시 공동 CEO를 맡는다.겔싱어 전 CEO는 지난 2021년부터 3년 간 인텔의 부활을 이끌기 위해 복귀한 인물이다. 그는 앞서 30년 간 인텔의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전통적인 '기술통' CEO다.겔싱어는 인텔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사들에 밀리기 시작하고 '반도체=인텔'이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진 상황에서 AI(인공지능)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여러 과제를 안고 CEO 자리에 올랐다. 독보적인 CPU 기업이자 독자칩 개발로도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지난 2010년 중후반경부터 급격한 경영 위기에 빠졌고 AMD 등 경쟁사들에 자리를 내주며 반도체 명가라는 이름을 내줘야 할 상황이었다.하지만 겔싱어의 이름값만으로는 인텔의 침체를 회복하기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겔싱어의 취임으로 인텔은 파운드리 생산 전략 조정과 프로세서 핵심 제품과 미세공정 개발 등의 연구개발(R&D) 동력을 확보해 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재임기간인 지난 3년 간 인텔은 AI 시장 대응까지 늦어지면서 더 깊은 늪으로 빠졌다는 평가다.겔싱어 마저 살리지 못한 인텔의 위기에는 앞선 경영진 시절 '기술 최우선주의'가 완전히 무너진 영향이 가장 주효했다고 꼽힌다. 지난 2013년 취임한 인텔의 6대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의 '원가절감' 중심 경영이 오늘날 인텔이 회복할 수 없는 위기까지 끌어내렸다는 평에 힘이 실린다. 지금까지도 크르자니크 CEO는 인텔의 위기를 만든 장본인으로 반도체업계에선 회자될 정도다.시장을 이끄는 최첨단 기술기업이었던 인텔이 원가절감의 잣대만 들이대다가 위기를 맞이하고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이 요원한 상황까지 처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도 이미 '인텔 전철 경계령'이 내려진지 오래다. 반도체업계 독보적 1위였던 인텔이 불과 10년 만에 경영 판단 착오로 퀄컴과 같은 경쟁사에 매각설이 나올 정도로 무너진 것이 단순히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특히 이번에 겔싱어의 퇴진으로 기술통 OB 경영진의 복귀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됐다. 최근 연말 인사로 삼성 반도체의 최전성기를 이끌던 인사들이 일제히 사업 수장으로 올라선 상황과 맞물려 다시 한번 경계의 고삐를 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메모리사업부까지 맡는 대표이사 직할체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전 부회장은 과거 삼성이 반도체 신화를 이룩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하나로 지난 5월 DS부문장으로 복귀했다.전 부회장 외에도 한종희 부회장과 정현호 부회장 등이 유임됐고 여기에 삼성SDI로 갔던 최윤호 사장도 삼성전자 관계사들의 경영진단을 진두지휘하는 조직 수장으로 복귀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여전히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믿을맨'들을 경영 전면에 다시 세우는게 안정적 선택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한계도 지적된다.
삼성 반도체의 경우 AI반도체 시장을 빨리 탈환해야 하는 속도전이 필수인 상황에서 OB 수장들의 경륜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차기 리더들을 키우는 속도는 더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여기에 인텔의 선례까지 더해져 내년 삼성의 위기 탈출 전략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 발전 속도과 과거 대비 훨씬 빨라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이 인텔과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