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복지성 사업에 교육교부금, 3년 간 42조원 지출 교육청은 펑펑 쓰고도 돈 남는데 정부·지자체는 빚 급증내국세 연동 교부율 손질 시급… "불합리한 제도 고쳐야"
  • ▲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DB
    ▲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DB
    [편집자 주] 올해 지방자치단체 예상 적자가 18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중앙정부 채무가 1145조원을 돌파하면서 나라 살림은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지방 교육청은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억지로 쓸 곳을 만드는 판이다.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경제규모가 팽창하면서 늘어난 내국세로 교육청이 받는 교육재정교부금이 교육현장 수요보다 커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받는 교육교부금을 손질할 때가 왔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21년 서울 내 모든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태블릿PC(디벗)를 무상 제공하기 위해 예산 600억원을 편성했다. 초3~고3까지 학생을 둔 서울 소재 가정의 98.6%가 원격수업이 가능한 디지털 기기를 갖고 있음에도 모든 중1 학생에게 무상 태블릿PC를 나눠 준 것이다.

    이듬해 서울시교육청은 5230여 학급에 전자칠판 설치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524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상당수 교실에 대형TV와 빔프로젝터 등 시청각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하지 않는 교실까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교육청이 교육교부금을 방만하게 쓴다는 지적은 서울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7월 광주시교육청은 예산 659억원을 들여 중고등학생 전원에게 무료 대여할 태블릿PC와 노트북을 구매해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태블릿PC의 부작용을 우려한 일부 학부모들이 수령을 거부했지만, 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억지로 내려보냈다.

    강원도교육청은 내년부터 매년 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내 고등학생에게 진로활동지원금 20만원을 재학 중 1회 지급한다. 학생들은 이 돈으로 문화생활이나 영화·공연·스포츠 관람 등의 진로 탐색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선심성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단돈 20만원으로 진로를 탐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 등에서다.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3년간(2020~2022년) 각 시도 교육청들의 불필요한 지출이 42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중앙정부에서 받은 교육교부금 195조1000억원의 약 22%가 흥청망청 쓰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운영하는 기금들에 쌓여 있는 돈의 규모는 18조6975억원에 이른다. 

    교육교부금을 내국세에 연동하는 기형적인 제도가 빚은 부작용이다. 교육교부금은 유·초·중등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가 걷는 내국세의 20.79%를 떼서 마련하며, 시도교육청 재정의 약 70%를 차지하는 주요 재원이다.

    ◇ 중앙정부는 빚더미, 지자체도 적자 재정… 교육재정은 남아돌아

    교육교부금 논란은 정해진 액수가 아닌 일정 비율로 떼주는 방식 탓이다. 저출산 영향에 학령인구는 계속 감소하는데 내국세의 20.79%를 자동으로 배정하다 보니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세수입이 늘수록 교부금 역시 증가하는 구조다.

    실제 2010년 학령인구 734만명이 올해 531만명으로 줄었지만, 교육교부금은 32조2900억원에서 75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작년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1426만원이다. 2029년에는 3000만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다보니 교육 현장에선 혈세가 낭비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돈이 모자라는 황당한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일정 비율 자동 배정하는 현 시스템을 손질하고 실제 필요한 교육예산에 맞춰야 하다는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기획재정부의 재정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1145조9000억원이다. 올 상반기(1∼6월)에도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103조4000억원의 적자를 보이면서 정부의 빚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사정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7개 광역지자체의 통합재정수지 총 적자 총액 18조5960억원이다. 들어온 돈보다 나가는 돈이 19조원가량 더 많다는 얘기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정부의 세수입이 예상보다 50조원 이상 줄면서 교육교부금도 약 10조원 줄었는데 교육청들의 재정 운용은 어렵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작년 100조원 규모의 예산 중 8조6000억원을 쓰지 못하고 올해로 넘겼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지자체 역시 재원이 없어서 빚을 내서 재정을 유지하는 상황인데도 교육재정은 남아돌고 있는 처지"라며 "교육재정 운영 주체를 지자체로 넘기는 등의 현행 교육교부금과 내국세를 연동하는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상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도 "지금의 교육재정 방식은 80년대 인구가 급속히 늘 때 교육비 확보를 위해 만든 재원조달 방식인데 지금 상황에선 합리적이지 않다"며 "국민의 혈세로 각 교육청의 보여주기·선심쓰기식 사업 문화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학에도 교부금 쓰도록 '특별회계' 신설… 임시방편이라 근본적 개편 시급

    정부는 유·초·중·고교에만 쓰도록 한 교육교부금 중 일부를 떼어내 대학에 투자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지난 2022년 7월 신설했다. 교육교부금 교부세율(20.79%)을 낮추려는 방안이 교육계 반발로 막히자 만든 임시방편이다. 

    3년 한시로 시행하기로 해 내년 종료를 앞뒀는데 정부는 이를 연장하기로 했다. 교부세율 낮추기, 학령인구 연동제 등 근본적인 교육교부금 제도 개편이 당장은 어렵다면 사용처라도 다양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앞으로 남아도는 교육교부금을 대학뿐 아니라 유보통합·늘봄학교 지원, 저출생·고령화 지원 등 중장기적 과제에 쓰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내국세가 자동 연동되는 교육교부금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교육교부금 제도는 불합리한 제도기 때문에 개편하고 재정을 확충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당국자는 "현행 교육교부금 제도는 변화가 필요한 만큼 현재 여러 개편 방안을 놓고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라며 "돈의 사용처를 확대하는데 저출산 대책 등에도 쓸지, 또는 교부율 자체가 바뀔지는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같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