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높은 상호관세 때려 대미의존도 높은 자동차, 최악 피했지만 타격 불가피 베트남·인도 등 韓 대표적 생산기지도 높은 관세에 '비상'관세 보복·확전 땐 수출 외 환율·물가도 줄줄이 타격 불가피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폭탄을 투하하면서 관세 전쟁이 확전일로다. 생산거점이 있고 대미 무역흑자가 높은 주요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상호관세를 세게 부과했다. 미국 내 제조업 기반 복구를 꿈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를 뿌리채 흔들고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적 질서를 재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계속된 악재로 그야말로 풍전등화 상태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모든 무역 대상국에 10%의 기본관세와 주요 무역적자국 60개국을 상대로 고율의 개별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고 밝혔다. 한국에는 총 25%의 상호관세가 책정됐다. 기본관세는 5일부터, 국가별 관세는 9일부터 추가로 발효된다. 

    국가별 상호관세율은 중국(34%), 베트남(46%), 대만(32%), 인도(26%), 태국(36%), 스위스(31%), 인도네시아(32%), 유럽연합(EU·20%), 일본(24%), 영국(10%), 브라질(10%), 이스라엘(17%), 호주(10%) 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정책으로 대변되는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내 제조업 부흥을 위한 것이란 입장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정원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은 미국 해방의 날"이라며 "미국 제조업이 다시 태어나는 날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상호관세 발표로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증가를 견인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따라 수출 중심의 경제인 한국은 경쟁국인 일본, EU보다도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됨에 따라 미국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됐다. 특히 자동차 등 주요 수출제품의 대미 수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다만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기본관세와 상호관세는 기존 발표한 품목별 관세와는 중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악은 피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은 미국의 3대 자동차 수입국이다.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별 자동차 수입규모는 멕시코(785억달러), 일본(397억달러), 한국(366억달러), 캐나다(312억달러), 독일(248억달러) 순이다. 

    한국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 347억4400만달러다. 지난해 한국 대미 수출(1277억8600만달러) 중 자동차가 27.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전체 자동차 수출액(707억8900만달러)의 49.1%에 육박한다. 이달 자동차 25% 관세 부과 시행을 앞두고는 지난달 대미 자동차 수출은 11%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빈 곳간을 각국 정부에 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제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미국과 협상에 들어가는 반면 한국은 컨트롤타워가 장기간 부재하고 있다는 점이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GM의 경우 대미 수출 비중이 85%에 달해 위기감이 큰 상황"이라며 "기업이 엎어지면 산업 생태계도 무너지는 만큼 정부가 수출 바우처,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추경편성 등 각종 비상 대책을 빠르게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경기도 평택항내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뉴시스
    ▲ 경기도 평택항내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뉴시스
    각각 46%와 26%의 상호관세가 부과되는 베트남과 인도에 생산거점을 둔 전자 ·가전업계 등도 비상이다. 상호관세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미국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삼성은 베트남에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이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 물량 50% 이상을 베트남에서 생산 중으로 이 중 상당량이 미국 시장에 공급된다. LG그룹도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 등이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인도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이들 국가의 관세율도 높은 만큼 생산기지 이동을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아시아국가에 상대적으로 높은 상호관세가 부과된 것은 이들 국가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가 크다는 점과 중국의 우회 수출 경로 차단, 미국 내 제조업 부활 등 복합적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반도체 분야도 비상이다. 상호관세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미국 투자 액설러레이터'를 신설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상무부 내 반도체법 프로그램 사무국(CPO)을 산하에 두도록 했다. 행정명령은 "전임 행정부보다 훨씬 더 나은 거래를 협상해 납세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명시해 사실상 칩스법 보조금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미 미국 투자를 발표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불확실성 앞에 놓인 셈이 됐다. 

    향후 중국이 장악력 높은 핵심 광물을 중심으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우려 요소다. 한국은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아서다. 희토류가 대표적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은 희토류 금속 80.0%, 희토류 화합물(65.4%)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수산화리튬도 82.7%로 중국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장상식 원장은 "중국이 핵심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는 미국에 대해서만 시행하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나라에 대해서는 시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차후의 문제이나 미중 관계가 더 악화하면 한국으로서는 대중국 공급망을 배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질 수 밖에 없고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세전쟁이 보복·확전으로 이어지면 고환율 장기화와 함께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도 나온다.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이 올라가면 수입 물가가 높아지면서 물가도 상승할 수 있다"며  "관세 정책으로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정치적 불안정까지 가세하면 국내 소비·내수가 더욱 침체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상호관세에 대한 주요국의 재보복 수위 및 강도도 또 다른 변수"라며 "2분기부터 대미 혹은 대아세안 수출 둔화 등으로 국내 성장률의 추가 둔화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이며 일각에서 언급되던 올해 0%대 성장률 가능성이 가시화되는 분위기"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