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공공기관 임원 39%는 文정부 출신… 현 정부와 '불협화음' 우려임기 막판까지 무더기 임명… "내사람 챙기기, 대통령직 사적 사용"법정임기 만료에도 후임 인선 지연… "인사 시스템 정상 작동해야"
  • ▲ 문재인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 ⓒ정상윤 기자

    용산 대통령실 선임 행정관 출신인 김대남 SGI 서울보증보험 상임 감사위원이 최근 좌파 유튜버와 통화한 5시간 녹취록에 해당 직을 꿰차는 과정이 일부 드러나며 '낙하산 인사'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해 말 대통령실을 나온 후 4월 총선에 나섰다가 낙천한 이후 연봉 3억원 안팎을 받는 금융사 2인자 자리에 직행한 것인데, 전문성 없는 선거 공신(功臣)들이 정부 산하기관 임원 자리를 마치 전리품인냥 꿰차는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 요직을 차지하는 '낙하산 인사'는 오래된 관행이자 악습이다. 이 시점에서 더 놀라운 것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알박기 낙하산' 인사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5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김대남 전 행정관은 지난 8월 초부터 SGI서울보증의 상임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SGI는 준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90% 이상을 소유한 자회사로 감사 연봉은 기본급(1억6000만원)에 성과급까지 합해 2억4000만~3억6000만원 수준이다. 

    김 전 행정관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설사에서 이력을 쌓았다. 윤석열 캠프에서 일하다가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지만 금융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녹취록에서 "다른 회사는 임기가 2년인데 (서울보증 감사 임기는) 3년이라 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있을 수 있어 내가 선택했다"고 했다. 이어 "(감사 자리는) 그냥 만고땡(편하다는 의미의 비속어)이다. G80 제네시스 나오고 운전기사, 비서 하나 생기고…"라고 말했다. 

    김 전 행정관은 지난 총선 직후엔 "어디 공기업이라도 가서 연봉 잘 받으면서 다음 대권에 누가 나올 건지 예의 주시해서 거기에 올라탄다든지 방법을 찾아야지"라고 했다. 총선 때 경기 용인갑 공천을 두고 검찰 출신인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과의 경쟁에서 밀린 직후에는 "(선거 때 이원모) 얘를 돕고, (김건희) 여사 쪽에 보험 들어서 공기업 사장이 됐든, 용산에서 다시 비서관을 하든지"라고 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김 감사위원이 어떤 관념으로 정치를 해왔는지, 감사위원직을 두고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전까지도 낙하산 문제가 있었지만, 낙하산 인사가 어떤 신념으로 요직을 맡는지 직관적으로 보여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공공기관 주요 임원의 '낙하산 인사'는 전문성을 필요료 하는 공공기관에 전문성 없는 이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게 문제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은 역대 정부에서도 줄곧 있어 왔다. 문재인 정부 때도 임기 말 낙하산 인사가 자행되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 

    가관인 것은 윤석열 정부 5년 임기 중 반환점을 돌고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의 40% 가까이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전 정부의 '보은 인사' 대상자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면서 정부기관 운영에 문제점도 제기된다.  

    경영정보 분석 업체인 리더스인덱스가 7월 상임 기관장이 있는 공공기관 314곳의 임원 현황을 집계한 결과, 윤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이 164명(52%),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이 121명(39%), 공석이 29명으로 나타났다. 

    문 정부가 낳은 기관장이 여전히 많은 것은 임기 막판까지 '알박기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과거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기관장 59명을 무더기로 임명했다. 이에 윤 정부 출범 7개월이 넘도록 공공기관 간부직의 86%가 문 정부 인사였다. 

    그 여파로 탈원전에 앞장섰던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과 안종주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등 다수의 친야권 성향 인사는 내년까지 임기가 남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부의 산하기관장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맞닿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독립성은 강화될 수 있으나, 정책적으로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이같은 알박기 인사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당선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 인사가 이어지자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임기 마지막까지 내 사람 챙기기 하는 건 대통령직의 사적 사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알박기 인사의 법정 임기가 끝났는데도 후임 인선 지연이 미뤄지며 이런 비판마저 궁색해진 상황이다. 특히 문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 121명 중 55명은 임기가 끝났는데도 후임 인선이 늦어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례로 한국동서발전 김영문 사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인 2021년 4월 임명돼 지난 4월 3년 임기가 끝났는데도 6개월째 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탈락자를 기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왔으나, 선거가 끝난 지도 거의 반년이다.

    전문가와 전현직 관료들은 인사 시스템의 문제점을 꼽는다. 대통령실과 전문가들이 일정한 시스템에 따라 기관장 등을 차례로 임명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지적이다.

    이종훈 평론가는 "인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안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이럴 경우에는 공공기관의 본연의 역할도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인사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어렵다면 새로 구축해 조속한 인사 임명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