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교육청 공동부담 특례 일몰 후 교육재정 부담 전환정부·여당은 교육교부금 넘치는 상황서 교육청 책임 강조테블릿PC 무상 제공에 교부금 600억 편성 등 '흥청망청'반면 野는 정부 분담 주장… 이재명 "정부 책임 포기" 공세학계 "교육청, 엉뚱한 데 돈 쓰면서 예산 방만 운영"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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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무상교육 예산 부담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야당·시도교육청 간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교육청에 배정되는 교육교부금이 학령인구 감소세를 반영하지 않은 채 과하게 책정됐다는 논란이 큰 상황에서 교부금을 고교 무상교육에 활용하면 부담 없다는 게 정부·여당의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교육청은 고교 무상교육을 두고 정부 책임론을 주장하며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고교 무상교육은 올해까지 정부와 교육청이 각각 47.5%씩 부담하고 지자체가 5%를 맡기로 합의된 한시적 제도였다. 하지만 올해 말 특례 조항이 일몰됨에 따라 내년부터는 교육청이 전액 부담하게 됐다.정부와 여당은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책임지는 시도교육청이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학령인구 감소와 내년 교부금 규모 등을 감안하면 교육청이 예산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교육청 예산인 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 일부로 조성한다. 내년 규모는 올해보다 3조4000억원 늘어난 72조3000억원에 달한다.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원칙상으로는 고교 무상교육을 지방교육재정에서 담당해야 하지만 그 당시 특수한 상황으로 일몰을 약속하고 도입됐던 것"이라며 "내년에 3조4000억원의 지방교육교부금 증액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일몰하고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이를 두고 민주당과 일부 교육청은 고교 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을 교육청이 전액 부담하면 재정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며 정부가 지속적으로 무상교육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정부가 국가의 책임을 포기했다"며 "재정 여력이 없는 교육청은 다른 사업들을 대폭 줄이거나 학생 복지 또는 학교 시설 보수유지 비용을 깎아야 하는 상황이 아마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한 비정한 정부"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었다.이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는 무상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해내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마치 정부가 무상교육을 포기한 것이냐는 왜곡·선동을 중단해 달라"고 강조했다.한 대표는 "(교육청 예산인) 지방교육교부금은 내년 3조4000억원이나 증가한다"며 "이렇게 국민을 속여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국민들은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못 쓰고 이월되는 교부금 매년 수조원… "예산 방만하게 운영됐다"야당과 교육청은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고교 무상교육 비용 전액 부담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교부금을 과다하게 받은 교육청이 선심쓰기식 지출을 한 사례가 알려지며 야당과 교육청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21년 서울 내 모든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태블릿PC(디벗)를 무상 제공하기 위해 예산 600억원을 편성했다. 초3~고3까지 학생을 둔 서울 소재 가정의 98.6%가 원격수업이 가능한 디지털 기기를 갖고 있음에도 모든 중1 학생에게 무상 태블릿PC를 나눠 준 것이다.교육청이 교육교부금을 방만하게 쓴다는 지적은 서울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7월 광주시교육청은 예산 659억원을 들여 중고등학생 전원에게 무료 대여할 태블릿PC와 노트북을 구매해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태블릿PC의 부작용을 우려한 일부 학부모들이 수령을 거부했지만, 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억지로 내려보냈다.강원도교육청은 내년부터 매년 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내 고등학생에게 진로활동지원금 20만원을 재학 중 1회 지급한다. 학생들은 이 돈으로 문화생활이나 영화·공연·스포츠 관람 등의 진로 탐색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선심성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단돈 20만원으로 진로를 탐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 등에서다.이같은 교육청의 방만한 예산 운영 사례에 전문가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 수는 지속해서 감소하는데 내국세와 연동된 교부금은 기계적으로 늘어났다"며 "시도교육청 중 일부가 엉뚱한 데 돈을 쓰면서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교부금은 2017년 46조6000억원에서 2019년 60조5000억원으로 늘었다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53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듬해 60조3000억원이 됐고 2022년엔 세수 호조 속에 81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교육청이 다 못 써서 이듬해로 이월한 예산도 매년 수조원에 달한다. 2018년 6조7000억원, 2020년 4조4000억원, 2022년 7조5000억원씩이다. 현재 시도교육청 17곳이 기금으로 쌓아둔 예산도 11조원에 달한다. 이에 고교 무상교육 전액 부담에 '예산이 부족하다'는 교육청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나라 곳간 비어가도 국고 부담률 유지 강행한 野이런 가운데 올해 10월까지의 국세수입이 지난해보다 12조원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기재부가 발표한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10월 누계 국세수입은 293조6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1조7000억원 감소했다.중앙정부는 세수 부족을 호소하고 교육청은 못다 쓴 교부금을 이듬해로 이월하는 상황이지만, 야당과 교육청은 고교 무상교육에 정부 예산과 교육청 교부금이 47.5%씩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공방이 이어지자 여당은 지난 10월 타협안을 내놓았다. 교부금법 특례 조항을 3년 연장하되, 정부 부담 비율을 2025년 15%, 2026년 10%, 2027년 5%씩 단계적으로 줄이는 것이다.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 세대에 걸쳐 균일한 교육의 질이 보장되기 위해 교육 예산의 안정성이 중요하다"며 "여당에서 제시한 급진적인 감축보단 40%, 30%, 20% 수준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그러나 야당은 현행 국고 부담률(47.5%)을 3년 더 유지하도록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정안을 지난달 29일 법안소위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 법안이 교육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통과해 최종적으로 입법될 경우 2027년까지 고교 무상교육 예산의 47.5%를 다시 국고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재정 당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