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기술력만 빼간 상하이차…금호타이어 '먹튀' 논란 지속중국계 사모펀드의 국내 알짜기업 적대적 M&A 우려 확산 교묘히 국내 기업 잠식하는 차이나머니…"국가 산업 방향성 영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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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대(對) 한국 공략에 대한 대응이 시대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수법이 중층적이고 교활하다. 때론 은밀하게, 필요할 땐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낸다. 중국은 한국을 전세계에 걸친 초한전(超限戰·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무제한 전쟁)의 첫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바로 이웃한 한국을 통해 초한전 역량을 시험하고 완성시켜 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충돌이 "글로벌 대리전 양상을 갖는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한국 경제 침투와 그에 따른 후폭풍, 대응 방안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재계와 자본시장에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가 다시 번지고 있다. 국내에는 이미 차이나머니(중국계 거대 자본)가 깊숙이 침투해 시장을 교란하고 근본적인 산업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제조기업 직접 인수를 통해 국내 기업들을 갉아먹었다면 이제는 사모펀드(PEF)를 통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교묘한 방식으로 자본시장에 침투, 기업들의 경쟁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차이나머니가 궁극엔 우리 자본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으로 변모해 국가 산업 방향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쌍용차·금호타이어 '먹튀' 논란으로부터 시작된 차이나머니 공포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자본에 외국인들이 투자하는 규모가 확연히 감소하던 와중에도 중국만큼은 달랐다.

    한국 FDI의 반 이상을 차지하던 미국과 EU의 투자 비중마저 40%로 줄어들었지만 유일하게 FDI 금액과 비중이 동시에 증가한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코로나로 국내에서도 반중 정서가 크게 확산되던 당시에도 중국의 FDI 금액은 무려 184.4% 늘어났고, 2020년 전체 FDI 중 중국의 비중도 2019년에 비해 5.46%포인트 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파고든 차이나머니와 관련해선 위기감을 동반한 적지 않은 논란이 이어졌다. 중국 기업이 알짜 국내 제조기업들을 사들인 뒤 기업 경쟁력만 갉아먹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됐다가 극심한 인력·기술 유출을 경험한 대표적인 사례가 쌍용자동차다.

    지난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경영이 악화하자 상하이차는 4년여 만에 쌍용차의 핵심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기술력만 빼돌린 뒤 법정관리를 신청, 직원 2646명을 구조조정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후 상하이차는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20여년이 넘는 기간 합작 생산만 도맡던 업체에서 벗어나 2007년 카이런을 꼭 닮은 독자 브랜드인 '로위'를 출범시키고 승승장구했다. 쌍용차의 기술력을 모두 뽑아간 덕분이다. 상하이차는 3000억원의 개발 비용이 투자됐던 쌍용차 SUV 카이런의 기술을 헐값인 280억원에 넘겨받는 등 기술력 유출에 집중했었다.

    회생절차 과정에서 쌍용차에는 최장기간 파업과 2600명 구조조정이라는 뼈아픈 상처만 남았다. 상하이차가 대주주로 있는 기간 동안 신차 출시는 물론, 개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쌍용차는 곧장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후 기술 유출 목적의 외국인 투자나 M&A를 막을 수 있는 산업기술보호법이 태동했다.

    한때 국내 1위 타이어회사였던 금호타이어는 경영위기를 겪고 지난 2018년 중국 더블스타에 인수됐다. 당시에도 금호타이어의 성장보다 기술·노하우 확보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노조와 지역사회의 첨예한 반대에 직면했었다.   

    금호타이어에 대한 더블스타의 '먹튀'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다. 노후화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부지와 관련 용도 변경을 놓고 광주시와 더블스타가 수년간 대치했다. 최근 광주시가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치긴 했지만 이면엔 과거 외환위기 때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사들인 뒤 되팔아 막대한 차익만 챙기고 국내서 철수한 사모펀드 론스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경영진은 중국자본 더블스타의 무차별적 비용 삭감 지시로 현장을 죽음의 공장으로 가속화시킨 것도 모자라 허울뿐인 독립경영으로 더블스타의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공룡 사모펀드의 적대적 M&A…교묘히 유입되는 차이나머니

    최근엔 차이나머니가 보다 교묘하게 국내 기업들을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년 사이 중국계 자금이 섞여 있는 일부 공룡 사모펀드가 재계의 이른바 알짜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M&A를 잇따라 시도하면서 논란은 불거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롯데렌탈을 인수에 나선 글로벌 사모펀드 어퍼니티다에쿼파트너스에 대한 우려다.

    어피니티는 SK렌터카에 이어 롯데렌탈까지 국내 렌터카 1·2위 업체를 모두 인수하면서 중국 BYD(비야디)와 협업해 국내 자동차 시장 진출을 노릴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어피너티는 삼성전자 출신의 박영택 전 회장이 말레이계 중국인인 탕콕유 창립회장과 2004년 UBS캐피탈 아시아태평양 투자조직을 중심으로 분사시켜 설립한 PEF 운용사다. 어피니티는 롯데렌탈과 SK렌터카를 도합 2조3000여억원에 인수하면서 공격적인 투자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 SSG닷컴, 락앤락 등에 투자했다가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간의 우려를 의식한 듯 최근 어피니티는 "BYD 및 중국계 자동차 사와의 협력은 논의된 바 없고, 구매 계획 또한 없다"며 해당 루머에 대한 악의적 확산에 대해선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행위로 법적 대응도 고려한다는 다소 격앙된 입장까지 밝혔다.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선  MBK파트너스에게도 '중국계 사모펀드'라는 우려 섞인 낙인이 찍혔다.

    MBK가 결성한 6호 펀드의 주요 출자 구성은 한국 20%, 해외 80%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중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으로의 기술·국부유출 가능성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투자 이후 일정 기간이 도래하면 투자금회수(엑시트)를 꾀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투자자의 고려아연 지분 매각이 예정됐고, 중국 자금이 연관돼 중국 등 해외로 경영권 매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재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MBK라는 투기자본이 중국 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치권과 지역사회도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도 "영풍이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은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고 우려했다. 울산 울주군을 지역구로 둔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 매각을 특히 경계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 자본과 관련 있는 사모펀드가 고려아연을 운영하게 되면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이 더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잭 넌 공화당 의원은 "중국과 연계된 기업들이 MBK파트너스가 주도하는 M&A를 통해 글로벌 정제 아연 생산 업체인 고려아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거대 자본으로부터 국가 산업 보호 움직임 확산…"이대로면 산업 근간 흔든다"

    차이나머니가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갈 수록 그들의 논리로 자본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키우며 산업 방향성에까지 영향을 주는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국 등 해외 거대 자본으로부터 국가전략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를 넘어 대형 금융자본이나 해외 자금으로부터 국가기간산업이나 첨단산업을 보호하는 각국의 움직임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지난 2023년 호주 정부는 실소유주가 중국계 자본인 오스트로이드 코퍼레이션이 시도하고 있는 호주 리튬 광산업체 알리타 리소스에 대한 지분 인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전기차 배터리 등을 만드는 데 필수 광물인 리튬 회사인 알리타 리소스의 매각이 국가 안보 중대선 면에서 우려의 지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역시 그럴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등에 따르면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 혹은 국감천단전략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한 투자를 할 때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두 법 시행령에서는 외국인 단독 또는 외국인이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인과 합산해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려 하는 경우도 '외국인 투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실질적으로 외국인이 지배하는 국내법인을 외국인에 포함한다는 명확한 내용이 없어 외국인과 외국계 자본 등이 국내법인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을 탈취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와 관련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기술보호 당국의 심판 필요 범위를 넓히려면 '국내법에 의해 설립됐으나 외국인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법인'을 외국인의 범위에 명시적으로 추가해 열거하는 것과 같은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알짜 기업 인수와 관련 논란의 중심에 차이나머니가 있었기에 중국계 사모펀드로 인한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들은 자본과 인력, 경영 노하우, 기술 등 경영의 실질적인 부분까지 관여하면서 기업을 흔들고 나아가 시장을 뒤흔들 만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춰가고 있다. 차이나머니를 비롯한 해외 자본의 유입의 긍정적인 효과만을 보기보단 위기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