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유예 … 숨 고른 한국, 통상 리스크는 여전대미·대중 수출 40% … 특정국 의존 구조 문제수출선 좁은 한국 … 협상력 약화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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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 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 관세 부과 발표 행사 중 무역 장벽 연례 보고서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서는 25% 상호 관세를 산정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주요국에 대해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의 통상 리스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관세 전쟁의 향방이 불확실해지면서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무역 구조가 지적되고 있다.10일 한국무역협회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 구조는 미국과 중국에 크게 집중돼 있다. 지난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19.7%, 대미 수출은 18.3%로, 두 나라 합산 의존도는 약 40%에 달한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이 두 국가와의 무역에 민감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외부 변수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10%의 기본 관세(보편관세)를 모든 국가에 적용한 데 이어, 9일 0시 1분부로 중국을 포함한 57개국에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우리나라는 '최악 침해국' 리스트에 포함돼 25%의 상호관세 적용 대상이 됐으나, 같은 날 오후 발표된 90일 유예 조치로 관세율은 일시적으로 10%로 낮춰졌다.그러나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이는 한국 수출품 중 고부가 산업에 해당하는 주요 품목이 여전히 규제 대상임을 나타낸다.이런 가운데 글로벌 무역전쟁 양상은 미중 간 정면 충돌로 좁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관세를 125%까지 인상하며 강경책을 유지했고, 중국은 이에 맞서 84%의 보복 관세를 발효했다. 양국 모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드러내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치킨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특히 반도체 산업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 전선에 위치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주요 국내 기업들은 미국 수출 통제, 중국 현지 수요 감소, 미국 내 현지 생산 압박이라는 삼중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 시장 비중이 높은 구조로, 고율 관세 부과 시 수익성 하락과 점유율 하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 10% 상승 시 국내 완성차 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1%포인트(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유예 조치로 산업계에선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해당 조치는 협상 여지를 열어둔 '조건부 유예'에 불과한 만큼, 한국이 미국의 요구사항을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이후 관세 복원이 결정될 수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고용과 무역수지를 기준으로 거래의 성패를 판단하는 '거래형 외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유예 조치 역시 정치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는 한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방위비 분담 등 안보 이슈를 연계하는 방식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지 않을 경우, 협상력이 약화되고 미국 내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 무역 갈등 역시 앞으로 줄어들 여지보다는 잦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다변화를 서둘러야 할 이유다.이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출 비중이 낮은 유럽연합(EU), 글로벌 사우스 국가 등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 핵심으로 떠오른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는 아세안,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이 포함된다. 인구 및 경제 규모를 키우면서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곳들이다.IMF 경제전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부터 2029년까지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GDP 성장률은 연평균 6.3%로 글로벌 노스에 비해 3.9% 빠를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2022년 세계 15대 경제대국에 포함된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인도, 브라질, 멕시코 3곳이었지만 2050년이 되면 인도네시아, 이집트, 사우디, 나이지리아가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현재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 규모는 저조하다. 2023년 기준 글로벌 사우스 국가 수출은 1865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29.5%를 차지했다. 규모면에서는 10년 전 1800억달러에 비해 소폭 늘었으나, 비중은 10년 전에 비해 2.7%포인트(p) 감소했다.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중국 등 특정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수출 구조상, 이번 관세전쟁 같은 일이 발생하면 대응에 취약성이 드러난다"며 "특정 국가에서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수출선의 다변화를 위해 정부, 기업이 모두 서둘러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