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돈풀기 정책 … 세입은 줄고 재정건전성 '빨간불' 적자국채 의존도 커지면 국가신용도 하락 부메랑 '우려감' 전문가 "재정은 화수분 아니다 … 미래 세대 부담 커진다"
  • ▲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민생회복지원금, 배드뱅크 설립,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막대한 재정 부담을 예고하며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조원 안팎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는 지역화폐 형태의 민생회복지원금과 부실 대출 인수를 위한 국채 발행 가능성, 쌀 의무 매입에 따른 재정 지출 등이 겹치면서 재정 부담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세입 기반이 흔들리고 경기 둔화와 관세 충격까지 겹친 상황에서, 생산성 확보 없이 재정 지출만 계속 확대될 경우 결국 국가 신용도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역화폐 지급 놓고 '포퓰리즘' 공방 격화 
    12일 정치권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0조원 이상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검토 중이다. 이번 추경의 핵심사업으로 거론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당초 여당이 주장한 '전국민 보편 지급'과 '선별 지급'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집권 여당은 소비 진작 효과를 내세워 전국민 지급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 당국인 기재부는 세수 여건과 재정 부담을 이유로 지급 방식과 규모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생회복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보편 지원이 바람직하다"며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기한을 정한 지역 화폐의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 좋다"라고 썼다. 다만 "정 어렵다면 범위를 정해 선별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일괄 지급할 경우 13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2조원 가량의 추가 재원도 요구될 전망이다. 전체 추경 규모가 20조원대에 달할 경우 추경 예산의 절반 가량 또는 그 이상이 한 사업에 집중되는 셈이 된다. 

    1차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이미 1280조8000억원에 이르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8.4%까지 상승했다. 올해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만 885조원을 넘어섰으며 전체 국가채무에서 적자성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20조원 이상을 국채 추가 발행에 기댈 경우 국가채무는 13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고 적자성 채무 비중 역시 7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 모두 추경 편성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추경 집행 형태 등을 둘러싸고는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특히 민주당이 제안한 지역화폐 지급 등 소비 쿠폰 형태의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국민의힘은 '현금 살포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야당 간사 서범수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지역화폐 추경안은 이재명 포퓰리즘의 신호탄"이라며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회성 현금 살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민생 대책, 실효성 있는 경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민생회복지원금이 재정 부담을 안고 추진되지만 단기적인 소비 진작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문제는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중요한 건 돈을 뿌리는 게 아니라 생산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이 돈을 벌고 일자리가 생겨야 소득이 늘고 소비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재정건전성 악화는 기초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긴급 대응일 수 있겠으나 반드시 근본적으로 생산성을 창출할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중고 주방 기기들이 중고주방 가구 매장 앞에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중고 주방 기기들이 중고주방 가구 매장 앞에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배드뱅크, 금융시장 왜곡·도덕적 해이 우려감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추진 중인 자영업자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배드뱅크' 설립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코로나19 사태로 쌓인 자영업자 채무를 정부가 떠안아 정리하겠다는 취지지만,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데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까지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실제 올해 재정 상황도 녹록지 않다.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올해 4월까지 46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세수가 늘며 적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18조5000억원 가량 줄었지만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인 코로나19 대출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배드뱅크 설립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배드뱅크는 금융사로부터 부실채권을 매입해 정리하는 기관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3년 8월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된 코로나 대출이 76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소비자가 상환한 금액을 제외하고 오는 9월 다시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만 총 50조원 규모다. 이 중 만기 연장된 금액만 47조4000억원이며, 2조5000억원은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이다. 만약  배드뱅크가 부실 가능성이 큰 채권을 30% 정도에 매입한다면, 최소 15조원 이상의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배드뱅크는 가계와 자영업자 중심의 배드뱅크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급증한 자영업자 대출과 다중채무자 문제를 정리하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 TV 토론회에서 "국가가 부채를 감수하더라도 다른 나라처럼 코로나19 극복 비용을 정부가 부담했어야 한다"고 했다. 대선 공약집에도 코로나19 정책자금 대출 탕감 및 조정과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용 배드뱅크 설치 등이 담긴 바 있다. 

    배드뱅크가 비영리법인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위가 지난 5일 '개인금융채권 관리 및 개인채무자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개인 금융채권을 매입할 수 있는 기관에 금융위 소관의 비영리법인을 포함하는 방안을 예고해서다. 이 경우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주도했던 '주빌리은행'과 유사한 형태로 배드뱅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주빌리은행은 금융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을 원금의 3~5% 수준에 매입했고 채무자가 원금의 7%만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탕감해 줬다.

    배드뱅크 설립과 관련해 가장 큰 쟁점은 역시 재원 마련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추경에 관련 예산이 반영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은행권 등 민간 금융기관의 공동 출자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 혈세가 투입될 경우 형평성 논란 뿐 아니라 빚을 갚지 않아도 결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준다는 잘못된 신호가 시장에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로 인해 금융 질서가 흔들리고 빚을 가볍게 생각하는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배드뱅크에 대해 재정 부담이 불가피한만큼 일시적 조치를 한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자영업 부실이 심각한 만큼 일시적인 정책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보나 장기화되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우려된다"며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고, 운영 방식에 따라 손실 규모와 재정 투입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만큼 한시적으로 운영하되 명확한 조건과 제한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자영업 과밀화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경직적인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 있다. 이를 개선하고 재고용 제도 및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자들이 다시 임금근로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재교육을 받은 경우에 한해 채무 조정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 정부의 공공비축미 창고. ⓒ연합뉴스
    ▲ 정부의 공공비축미 창고. ⓒ연합뉴스
    ◇재부상한 양곡관리법, 재정 부담 '뇌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던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곡관리법은 쌀 수급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쌀값 하락을 고착화시키고 품질 저하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쌀이 과잉 생산될 경우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쌀값이 기준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을 보전해 주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대규모 예산 투입도 불가피하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쌀 매입에 1조2000억원 이상을 투입했고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2030년에는 그 비용이 연간 3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한다. 

    이 대통령의 당선으로 사실상 '브레이크'가 사라진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회 통과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이 밀어붙이면 국회 통과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다. 이 법안은 이 대통령의 대선 핵심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대통령 거부권도 무의미해졌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은 민주당이 야당 시절 강력하게 추진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입법에 성공하지 못한 민생법안들"이라며 "민주당은 이 법안들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이제는 거부권에 가로막힐 일은 없을 테니 입법이 성공할 것이다"고 자신했다.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쌀을 국민 세금으로 사들여 창고에 장기간 쌓아두는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야당 시절 민주당이 주도해 밀어붙인 양곡관리법이 정권을 잡은 뒤에는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해온 벼 재배면적 조정 정책이 사실상 동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양곡관리법은 쌀 과잉생산을 억제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려는 배 재배면적 조정제와 충돌하고 있어서다. 

    특히 농촌 고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기계화율이 100%에 달하는 벼농사는 여전히 가장 손쉬운 작물로 꼽힌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농민들이 굳이 타작물로 전환할 이유가 사라지고, 오히려 정부 매입을 노린 쌀 생산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예산 부담과 함께 쌀 품질 저하, 가격 왜곡 등의 부작용도 불가피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양곡관리법 시행 시 막대한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농경원이 보고서에 따르면,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데만 2030년까지 연평균 9666억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며, 관련 지출은 갈수록 늘어 2027년에는 1조1872억원, 2030년에는 1조4659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가격 안정을 꾀하고 농가 소득을 보호하려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쌀이 이미 과잉생산 상태에 있는 현실을 외면한채 의무 매입 조항을 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정부가 재량권 없이 초과 생산분을 무조권 사줘야 한다면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돼 시장 기능을 훼손하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 초기부터 막대한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한 이같은 사업들이 동시에 추진될 경우, 급격히 늘어난 재정 부담이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결국 현재의 재정 지출은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짐으로 남는다"며 "적자 국채 발행이 당장은 세금을 더 걷지 않아도 되고 구조조정도 미룰 수 있어 쉬운 방법일 수 있으나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무한정 빚을 지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조 명예교수는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이자부담이 커져 재정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 국가신용등급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화폐와 같은 무분별한 재정 투입은 반드시 신중하게 다뤄야 하며 재정건전성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