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실효성·규제·자본유출' 삼중고이창용 총재 "원화 코인, 달러 토큰 전환 가속 우려"카카오·네이버 잇단 출원 … "실사용 없는 선점은 헛바람""옥석 가리기 올 것 … 구조 정비 없는 돌진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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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발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금융망을 빠르게 점령하는 가운데 국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실효성 부족, 제도 공백, 자본유출 우려라는 ‘삼중 부담’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포럼 정책토론에서 “규제되지 않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달러 기반 토큰으로의 전환을 촉진해 자본유출 통로가 될 수 있다”며 공개 경고에 나섰다. 그는 “공공 네트워크상 민간 발행은 한국은행의 권한을 넘는 사안이며 정부 및 유관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자본통제 무력화 우려”

    이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현재 한국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핀테크 등 비은행 금융기관까지 발행 주체로 허용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에서도 같은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 확산을 막기 위해 원화 토큰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달러 토큰으로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외환유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CNBC와의 인터뷰에서는 “규제되지 않은 채 민간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순환되면, 한국은행이 통화 공급을 조절하는 능력이 현저히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CBDC는 보류 … 핀테크·카드사 민간 발행 가속

    이런 우려 속에서 한국은행이 주도하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사업은 사실상 보류 상태에 접어들었다. 반면 국정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며, 핀테크는 물론 은행, 카드업계까지 사업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측은 “원화 토큰이 카드 결제망을 대체할 수 있다”며 카드사에도 관련 업무 허용을 요청할 계획이다. 국회에는 디지털자산기본법, 디지털자산혁신법 등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으며, 자기자본 요건(10억원 이상), 공시·감사, AML(자금세탁방지)·KYC(고객확인제도) 등 규제 의무도 논의 중이다.

    ◇“상표는 난무, 모델은 부재” … 실사용 ‘제로’

    시장에서는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하나은행, 국민은행 등 주요 플레이어들이 ‘원화(KRW)’ 기반 상표권을 앞다퉈 출원 중이지만, 실제 사업계획이나 수익모델은 전무한 상황이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테마주는 수십 퍼센트의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상표 선점만 난무하는 ‘묻지마 경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는 2020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BKRW)을 발행했다가 유동성 부족과 규제 리스크, 낮은 수요로 인해 8개월 만에 철수했다.

    ◇전문가 “기대만 앞섰다 … 국내는 미국과 구조 자체 달라”

    임민호 신영증권 디지털자산 담당 연구원은 “달러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사업 구조부터 다르다”며 “미국 모델을 단순히 따르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는 기축통화라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지만 원화는 국내 유통에 한정돼 은행 예금 이탈과 신용창출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익성 문제도 짚었다.

    그는 “달러는 글로벌 통화라 송금, 무역, 디파이 등에 쓰이지만, 원화는 그럴 수 없다"면서 "국내에선 이미 간편결제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고, 토큰이 이를 능가할 차별점이 없다”고 진단했다.

    임 연구원은 최근 빅테크·은행권의 상표권 경쟁에 대해 “아직 법도 없고, 사업 모델도 안 나왔는데 상표부터 선점하는 건 기대감 과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종의 선점심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옥석 가리기 국면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구체적인 담보 설계, 명확한 규제 체계, 실사용 기반을 갖춘 토큰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며 "법제화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릴 텐데, 실체 없이 돌진하는 건 무모한 전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