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세율 조정 조건으로 무역시장 개방과 관세·비관세 장벽 제거 꼽아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해제·쌀 시장 개방 등이 협상 카드로 부상돼 농민단체 반발 이어져 … 전문가 "통상 교섭 지렛대로 활용 가능성"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수입 제품에 대해 부문(품목)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관세 세율 조정 조건으로 폐쇄적인 무역시장 개방과 관세·비관세 장벽 제거를 제시했다. 이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비관세 장벽 완화가 협상 카드로 부상하면서 국내 농축산업계가 협상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 미역무역대표부(USTR)는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를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와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허용, 쌀 수입 확대 등을 요구하는 등 농축수산물을 정조준했다. 

    한국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 중국, 대만 등 주요 교역국이 미국산 소고기 30개월 제한을 해제한 것을 들어 '차별적 조치'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한미 고위급 관세협상에서도 미국 측은 미국산 소고기 30개월 제한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내 한우 농가의 반발과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 등을 고려할 때 섣불리 양보안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의 대부분이 30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미국 측에서 소고기 수입 규제 완화 요구가 직간접적으로 언급되면서 한우농가들의 불안감도 고조되는 양상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한미 관세 조치 협의 관련 공청회'에서는 전국한우협회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사 반대한다는 등의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한우 농가들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허용되면 소비자 불신을 키워 미국산 소고기는 물론 한우의 소비감소로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 미국은 우리과이라운드(UR) 이후 정체된 쌀 시장 개방 조치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제외한 수입산 쌀에 대해 513%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의 TRQ 물량은 13만2304톤 수준으로, 미국은 TRQ 물량 확대와 기본 관세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하던 당시에도 "한국이 미국산 쌀에 최대 513%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같은 미국의 요구는 대선 기간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쌀 TRQ 감축 공약과도 충돌한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미국산 쌀에 대한 관세 완화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다른 국가들로부터 유사한 요구가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며 "실제로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이후 한-EU(유럽연합) FTA, 한-중 FTA 등 통상 협상에서도 기준처럼 작용한 선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LMO 수입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전미대두협회와 전미대두수출위원회에서 미국산 유전자변형 대두의 검역 기준을 완화하고 있고 미국생명공학산업협회에서도 한국의 LMO 수입 위해성 심사제도를 비관세장벽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검역과정 간소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협상단이 농업 부문에서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것은 단순 통상적 이익 추구를 넘어 자국 산업계에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라며 "유전자변형 식품 관련 문제 제기 역시 중국과의 무역 분쟁 장기화로 인해 미국산 대두의 대중국 수출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자국 내 우려에 대응하는 전략적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사과도 통상 협상카드로 급부상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1993년 이후 33년째 8단계 수입위험분석 절차 중 2단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사과생산자 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사과연합회와 한국과수농협연합회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미국산 사과 검역 완화 검토 철회와 통상 협상에서 사과 등 주요 농산물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 등을 요구했다. 한국농업경제학회는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국내 사과 시장이 전면 개방될 경우 사과 가격이 최대 65%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박연순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전무는 "한국은 7만여 사과 농가가 3만3000ha 면적에서 사과를 재배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액이 1조4000억~2조 가량인데, 수입 개방으로 가격이 65% 하락하게 되면 생산비도 보장 못 받는 셈이 된다"며 "우리의 10배 생산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 그보다 더 큰 생산력을 지닌 중국 등에서 시장 개방 압력이 커지면 국내 과수 산업은 수입 과일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어 사실상 초토화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미국이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문제 삼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은 관세 전쟁의 주 목적 중 하나로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어서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농축산물 개방은 한국의 민감한 이슈로 정치적 파급력도 큰 만큼 미국은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자국으로의 투자 확대와 유리한 조건에서의 방산 협력, 국방비 증액 등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봤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순수한 통상 문제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국방비와 환율 등 다양한 사안을 포함한 포괄적 패키지를 지향하고 있다"며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등 비관세장벽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미국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협상 카드로서의 성격이 짙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