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폭염·해수 온도 상승 '이중 재난'배추·수박·오이 등 농산물 가격 들썩 '국민 횟감' 광어·우럭 가격도 상승세닭·돼지 폐사 이어져… 축산물도 불안정부, 생육관리·수입대체 등 대응 총력
  • ▲ 폭염ㆍ장마 여파로 채소류 가격이 들썩이고 있는 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폭염ㆍ장마 여파로 채소류 가격이 들썩이고 있는 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유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며 ‘먹거리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짧은 장마와 이른 폭염이 겹치며 여름철 농작물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고,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해산물 가격까지 들썩이며 이른바 ‘히트플레이션(폭염+인플레이션)’이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가 수급 안정과 가격 통제에 나섰지만, 기후발 충격 앞에서 대응 여력은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물가 지표는 전반적으로 안정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부 품목별로 소비자들의 체감물가가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온 신선식품의 가격이 오를 조짐을 보이면서 ‘물가 부담→소비 위축’ 악순환이 심화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제기된다.

    '후행 지표' 생활물가지수와 소비자 체감물가 괴리↑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2%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도 2.5%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곧바로 들썩이는 산지 가격과 달리 물가 지표는 후행적이다. 여기에 ‘전년 동기 대비’의 통계적 착시까지 겹친 수치로, 품목별 공급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 ▲ 폭염이 지속되면서 가축 폐사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한 축사에서 북구청 직원들이 살수차량을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뉴시스
    ▲ 폭염이 지속되면서 가축 폐사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한 축사에서 북구청 직원들이 살수차량을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뉴시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 목표보다 약간 높게 나온 수준이어서 실질적으로 높지 않다”면서 “다만 소비자들이 장을 볼 때는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는 괴리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상고온과 직결된 채소와 과일 가격부터 불안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해엔 어김없이 채소·과일류 물가가 폭등했다. 폭염일(일최고기온 33도 이상)이 역대 가장 많은 31일로, 최악의 더위를 기록한 2018년 당시 채소물가의 전년대비 상승률은 9월 12.3%, 10월 13.5%, 11월 13.7% 등 두 자릿수를 나타냈다.

    특히 상추(9월 44.3%), 시금치(9월 70.5%), 미나리(9월 54.8%), 부추(8월 36.6%), 무(10월 34.4%), 당근(9월 48.8%), 생강(9월 104.1%)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과실 물가도 8월 8.2%, 9월 13.4%, 10월 13.9%, 11월 13.0%, 12월 10.9% 등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수박(9월 38.1%), 복숭아(9월 28.8%), 참외(9월 25.8%) 등의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역시 평균 최고기온이 30.4도로 관측 사상 2위를 기록하며 역대급 더위를 나타냈다. 9월에 폭염경보가 내려지면서 강력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이에 여름철 하향안정세를 보였던 채소 물가상승률은 9월 11.5%, 10월 15.6%, 11월 10.4%, 12월 10.7% 등으로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특히 배추(9월 53.6%), 무(12월 98.4%), 열무(10월 49.4%), 당근(12월 65.5%) 등 김치 재료가격이 폭등하면서 겨울철 김장 물가를 끌어올렸다.

    과실 물가도 연초부터 불안한 흐름을 보이며 5월 38.9%, 6월 30.8%, 7월 21.0% 등의 높은 상승폭을 나타냈다. 배가 6월(139.6%), 7월(154.6%), 8월(120.3%) 연속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7월 상승률은 관련 통계가 있는 1976년 1월 이후 최고치였다. 감(8월 56.4%), 귤(6월 57.5%), 복숭아(6월 53.7%) 등도 50%를 웃도는 상승률을 나타냈다.

    농작물 이어 해산물, 축산물까지… 밥상 물가 비상

    이미 생육 부진으로 수박·상추 등 농작물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어획량이 줄어든 고등어·오징어 등 수산물 가격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118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에 닭·돼지 등 가축 폐사 피해까지 속출하며, 향후 밥상 물가가 더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산물 가운데선 선호도가 높아 ‘국민 횟감’으로 불리는 광어와 우럭 가격이 연일 상승하고 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치어(어린 물고기) 폐사가 집중, 공급량이 급감한 데다 올해 조기 폭염으로 양식 어장 형성에 차질이 빚어지며 수급 불안이 계속된 영향이다.
  • ▲ 2024년 8월 12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도 양식어민이 폐사한 우럭들을 건져내고 있다. ⓒ연합뉴스
    ▲ 2024년 8월 12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도 양식어민이 폐사한 우럭들을 건져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도매가격 기준 광어는 ㎏당 1만93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올랐고, 우럭은 ㎏당 1만6125원으로 같은 기간 41.8%나 상승했다.

    광어와 우럭의 산지 가격과 도매가격은 최근 5년 평균과 비교해서도 많이 올랐다. 특히 우럭은 지난해 대량 폐사로 작년보다 양식 물량이 적은 상황이어서 이달 우럭 출하량은 1150t(톤)으로 지난해보다 6.7% 감소, 가격이 더 뛸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는 짧은 장마로 폭염이 일찍 찾아오면서 지난해보다 보름 더 빠른 이달 9일 고수온 위기경보 ‘경계’ 단계가 발령됐다. 아직 우려하는 양식장 집단 폐사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날로 뜨거워지는 바다에 어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서민의 조개’ 바지락도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생산량이 급감,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기후변화학회에 따르면 정필규 국립부경대 자원환경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바지락 생산량 변화와 경제적 피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온실가스를 현재 수준으로 배출하는(고탄소 시나리오) 경우 2041~2050년 바지락 생산량은 2000~2022년 대비 5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닭·돼지 등 가축 폐사 피해도 늘고 있다. 지난 7일 기준 전국에서 폭염으로 죽은 가축은 13만 7382마리로 1년 전보다 4만5812마리 늘었다. 닭, 오리, 칠면조 등 가금류가 12만6891마리로 가장 많았고 돼지도 1만591마리가 폐사했다. 아직 폐사 피해가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지만, 무더위가 지속되면 피해는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수급 불안이 컸던 품목들을 중심으로 수급 관리 강화에 나섰다. 주무 부처를 중심으로 병충해 예방이나 영양제 보강, 냉방 시설 등 생육 관리를 강화하고, 정부 비축물량도 최대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수입품목으로 대체할 수 있는 품목에는 할당관세를 지속 적용할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지자체, 생산자 단체 등과 생육관리 협의체를 운영하며 폭염에 대응 중이고, 해양수산부는 ‘비상대책반’과 함께 수과원·지자체의 ‘현장대응반’을 함께 운영하며 대응에 돌입했다. 해수부는 이번 2차 추가경정예산안 중 여름철 고수온 대응과 김 수급 관리 등에 80억원을 편성해 고수온 대응 장비 보급, 양식장 현장 점검 등을 강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