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정부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 강하게 압박구윤철 기재·김정관 산업 장관 이번주 방미 추진통상당국,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개방 검토농민들 반발… 농축산 당국도 사전협의 없어 발끈국익차원 냉정한 결단 필요성… "확대개방 불가피"
  • ▲ 미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에서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 후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 미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에서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 후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최근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통과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새정부 초대 경제팀이 곧 미국을 방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8월 1일부터 한국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한다고 예고함에 따라 막판 '2+2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

    이미 '관세율 25%'라는 트럼프 서한을 받아 든 상황에서 우리로선 돌파구 모색이 쉽지 않다. 자동차(25%)와 철강(50%)에 이어 반도체와 의약품도 품목별 관세가 예고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선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미국 측을 설득할 실질적인 협상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정부 등에 따르면, 구 부총리와 김 장관은 이번주 미국을 방문해 한미 '2+2 관세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지금 미국과 협의 중에 있는데 최대한 빨리 (미국에) 가서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관세협상이 최대한 잘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관세를 무기로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 철폐, 쌀 시장 개방, 구글 정밀지도 반출 제한 해제 등 다양한 비관세 장벽 해소를 요구해왔다. 이와 함께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 보다 5배 많은 100억달러로 인상하라고도 압박하고 있다.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다.

    정부는 사실상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동안 3차례에 걸쳐 한미간 고위급 관세 협상을 벌였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성과는 없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안 완화 등 농축산물 시장을 일부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부는 업계 반발을 고려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검토하지 않았지만, 미국 측이 끝까지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여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농산물도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 "분명 우리가 지켜야 할 부분이 있지만 또 우리의 제도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 어떻게 보면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유연하게 볼 부분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감한 부분이어서 지킬 것은 지키되 협상 전체의 틀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 "농축산물은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 등 어떤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진행해도 고통스럽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확대를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지키고 싶은 걸 모두 지키면서 우리가 바라는대로 협상 결과를 얻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산물 추가 개방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한 것은 내줄 건 내주면서 지킬 건 지키자는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농축산 업계가 즉각 반발했다. 전국한우협회는 다음날인 15일 '이 정부는 또다시 성명을 통해 농축산물을 희생양 삼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부가 농축산물 수입장벽을 추가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농축산업의 고통과 희생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농축산업의 고통과 희생 속에 타 산업들은 성장했지만 농축산업은 퇴보해 갔다"며 "각국과의 통상협상에서 한우산업은 매번 희생양만 되어 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우협회는 여 본부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전국의 농축산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07.17. ⓒ뉴시스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07.17. ⓒ뉴시스
    농축산 당국도 발끈하고 있다. 여한구 본부장이 농산물 시장 개방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정작 농림축산식품부와는 사전 협의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농식품부 당국자는 "여 본부장이 결정되지 않은 사안을 독단적으로 언급하며 농업계를 크게 자극시켰으나, 해당 발언 전후로 농식품부와 일절 대화나 협의는 물론 설명도 없었다"며 사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통상당국은 소고기 수입 확대 외에도 쌀 수입 쿼터 확대, 사과 수입 개방, 유전자변형농작물(LMO) 일부 수입 허용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중장기적으로 한미 투자펀드 결성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도 고려하고 있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관계부처 및 농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듯 소고기·쌀·사과 등 개별적인 협상 품목에 대해서는 "아직은 결정 된 바 없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을 보호하고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선 우리도 일정 부분 양보를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손익을 철저히 따지고, 불가피하게 손해 보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해 당사자 설득은 물론 관계부처의 조율을 서두르는 등 전체 국익을 위한 냉정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우리가 수입을 확대하는 수 밖에 없다"며 "미국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정도를 수용할 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고기와 사과 같은 품목은 국내산 가격이 높기 때문에 (물가 안정 측면에서) 수입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그 다음에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