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 인상론에 엇갈린 당정 메세지 … 흔들리는 세제 신뢰 여당 내부도 보유세 의견 충돌 … 지도부 "보유세 논의 안 해"전문가 "유동성 장세 속 부동산만 겨냥, 비현실적 접근" 지적 "보유세 급등 땐 조세저항 … 부동산 시장 불안·민심 이반 우려"
  • ▲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뉴시스
    ▲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뉴시스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정책을 놓고 연일 엇박자를 내는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세제 정책의 핵심 '보유세'를 두고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부동산 보유세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자 여당에서는 내년 지방 선거에 악영향을 준다면서 보유세 논의 자체에 선을 긋고 나섰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과거 금융투자소득세처럼, '따로국밥' 식으로 정책위의장을 지낸 진성준 의원 등은 보유세 인상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당정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까지 엇갈린 메세지를 내며 시장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한정애 정책위원장을 단장을 중심으로 '주택시장 안정화'라는 명분 아래 '주택시장 안정화 태스크포스(TF)'를 띄웠다. 10·15 부동산대책과 관련한 보완책 마련에 나선다는 구상이지만 최근 불거진 보유세 인상 논란을 수습하려는 진화성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단장은 "아직 대책이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황에서 또 다른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며 "10·15 대책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고 정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당정이 논의할 게 마련됐다고 하면 그때 가서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상 보유세 인상 논의에 선을 긋는 발언이다. 

    민주당이 TF까지 출범하며 성난 민심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보유세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여당은 '보유세는 논외'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당 일각에서는 보유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당 내 대표적인 조세 강경파인 진성준 의원은 "보유세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부동산 세제의 큰 원칙은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올리자는 것"이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며 이견을 표출했다.

    또 '똘똘한 한 채'를 겨냥해 "보유 주택 수와 관계없이 보유한 주택의 전체 가격을 합산해서 누진적으로 (세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엇갈린 메시지가 발신되면서 정책 신뢰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여당이 시장 불안 요인을 스스로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 세제개편을 둘러싼 엇박자는 당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보유세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구 부총리의 '매년 집값의 1% 보유세' 발언이 대표적이다.

    구 부총리는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 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산세를 미국처럼 1%로 올리면 50억원 주택 보유자는 1년에 5000만원씩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보유 부담은 낮고 양도세 부담이 커서 거래가 막히는 '락인(lock-in) 효과'가 심각하다"며 "팔 때 (부담이) 가벼우면 시장에 매물도 나오고 (부동산 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갈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유세가 인상되면 시장에 매물이 많이 나와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란 취지의 설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동산 세재 개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 정부가 보유세와 거래세를 인상한 뒤 시장에선 오히려 매물이 줄고 집값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가 주택시장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를 통한 세 부담 증가는 주택가격 상승을 막는데 기여하지 못했고, 오히려 주택 매매가격은 인상하는 역효과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은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60개 분야의 세금을 매기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공시가격이 올라가면 보유세 부담이 증가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10% 상승하면 주택가격은 1~1.4% 인상되고, 전세가격은 1~1.3%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 모든 자산 가치가 오르는 상황에서 특정 실물 자산, 특히 부동산 중 아파트, 주택만 겨냥해 가격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 ▲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을 부추긴 조세 제도에도 손질도 예고했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나 고령자특별공제도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구 부총리도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국감에서 "집 한 곳에 20~30년 살았는데 공제를 줄이는 것에 대한 국민대 공감대를 살펴서 연구해 보겠다"고 했다.

    다만 기재부는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가 중장기 관점에서 논의 중"이라며 시행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만일 보유세가 1% 수준으로 높아질 경우 고가 아파트를 장기 보유해온 은퇴 세대가 직격탄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세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고령층 집주인들이 매물을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근 대출 문턱이 한껏 높아진 상황인 만큼 이들의 매물은 자금 여력이 충분한 고소득층이나 현금 부자들의 매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서울 핵심 지역의 진입 장벽은 한층 더 공고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강남 범위가 확장되고 재건축 등으로 집값이 오르면서 자산 가치는 크게 뛰었지만 실제 가처분 소득이 많지 않은 강남 집주인들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유세를 과도하게 인상하게 되면 세금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고령층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게 되고,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은 집값은 물론 매년 세금과 생활 수준까지 감당할 수 있는 자산가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며 "이 경우 거주지역에 따른 신분의 고착화가 발생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도 "보유세가 급격히 강화되면 집주인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며 은퇴자 등 고령의 집주인을 중심으로 매도 물량이 일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보유세 강화와 함께 의미 있는 수준의 양도세 완화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되는 등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령 매도 물량이 나오더라도 과거보다 높아진 대출 문턱 탓에, 서울 핵심 지역일수록 실제 거래는 대출 없이도 현금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는 자산가 중심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을 것"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세제 전반의 구조 개편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보유세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되, 그만큼 취득세와 거래세를 낮추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보유세를 단기간에 과도하게 올리게 되면 조세저항이 커져 부동산 시장 불안과 민심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