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원 아시아 심사위원 인터뷰"광고는 목적은 브랜드의 과제 해결,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미완성일 뿐""위대한 크리에이티비티 많이 접해야 자신만의 기준 정의할 수 있어""아시아 각국, 진정한 의미의 연대 이뤄야 글로벌 무대서 대표성 가질 수 있어"
  • ▲ 조 디(Joe Dy) VML 마닐라 CCO. ©2025 ONE Asia(윤용기 포토그래퍼)
    ▲ 조 디(Joe Dy) VML 마닐라 CCO. ©2025 ONE Asia(윤용기 포토그래퍼)
    "요즘 광고업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다시 우리 일을 재밌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인정(validation)이나 보상(money)을 좇지 말고, 여러분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을 좇으세요. 그것이 결국 여러분을 훨씬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겁니다." 

    AI(인공지능)의 출현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한 광고 업계의 어려움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30여년 간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일하며 필리핀에서 가장 존경받는 크리에이티브 리더로 평가받는 조 디(Joe Dy) VML 마닐라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는 이렇게 힘든 시기일수록,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장기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건넸다.

    브랜드브리프는 2025 원 아시아 심사가 진행된 서울 신라호텔에서 조 디 CCO를 만나 올해 심사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와 함께, 미래를 이끌어나갈 영 크리에이티비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 들었다.

    조 디 CCO는 먼저 "올해 원 아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다른 방식의 탁월함'이 돋보였던 해였다"고 말하며 "서로 다른 배경과 시각을 지닌 심사위원들의 조합도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그간 칸라이언즈(Cannes Lions)를 비롯해 클리오, 뉴욕페스티벌, 애드페스트(ADFEST) 등 글로벌 주요 광고제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조 디 CCO는 자신만의 심사 기준 3가지에 대해 밝혔다. 

    먼저, 작품을 봤을 때 "와, 저건 내가 만들었어야 하는데", "정말 부럽다"와 같은 질투심과 감탄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가가 첫번째 기준이다. 이와 함께 '크래프트(craft)'의 완성도와, 브랜드의 과제를 실제로 해결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꼽힌다. 

    조 디 CCO는 "(캠페인 속)단어 선택과 문장의 리듬, 스토리의 어조까지 세심하게 다듬어진 작품은 언제나 눈에 띈다"며 "또한 그 작품이 실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과제를 해결했는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라 해결사"라며 "광고는 결국 브랜드의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크리에이티브는 아무리 멋져도 미완성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 그가 올해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작품은 바세린(Vaseline)의 'Vaseline Verified' 캠페인(오길비 싱가포르 대행)이다. 그는 이 캠페인이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을 새롭게 정의했다"고 평가했다. (* 'Vaseline Verified' 캠페인은 소셜미디어 상에 퍼져 있는 수백개의 바세린 활용법을 바세린이 공식적으로 검증하고, 올바른 활용법을 공유한 인플루언서에게 공식 인증을 해줌으로써 브랜드 역사상 최대의 인터랙션(6330만회 이상)을 기록했다.)

    조 디 CCO는 "인플루언서나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은 매우 흔하지만, 이 캠페인은 그런 협업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방식으로 접근했다"며 "지난 10년 넘게 이어져 온 수많은 트렌드와 '뷰티 핵(hack, 꿀팁)'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바세린 팬들과 사용자들, 그리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거대한 문화적 흐름으로 재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인플루언서를 브랜드 홍보에 참여시키는 전형적인 소셜 미디어 캠페인이 너무 많지만, 이 캠페인은 그 과정을 신선하고, 지금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냈다"며 "그 부분이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호평했다.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의 '밤낚시(Night Fishing)' 캠페인(이노션 대행)과 Whānau Ora(와나우 오라, 뉴질랜드의 복지 및 사회 서비스 이니셔티브)의 'Māori Roll Call' 캠페인(Motion Sickness 대행) 등을 인상 깊은 캠페인으로 꼽았다.
  • ▲ 조 디(Joe Dy) VML 마닐라 CCO. ©2025 ONE Asia(윤용기 포토그래퍼)
    ▲ 조 디(Joe Dy) VML 마닐라 CCO. ©2025 ONE Asia(윤용기 포토그래퍼)
    그는 '위대한 크리에이티비티'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 디 CCO는 "심사위원으로서든, 실무 크리에이티브로서든,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의 기준(standard)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한 것의 범위 안에서만 정의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작품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작품들을 의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경험이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비티 기준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며 "요즘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충분히 밀어붙이면 여전히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제나 더 새롭고, 더 놀라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기회는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티브 리더 중 한 명으로서, 아시아가 글로벌 무대에서 더 강력한 대표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조 디 CCO는 "글로벌 광고제 심사를 하다보면, 여전히 영미권 중심의 관점이 크리에이티비티의 기준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며 "아시아는 분명 엄청난 재능과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 문화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표현하거나 설명할 때는 서구권 작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어떤 캠페인에서 지미 팰런(Jimmy Fallon)이나 지미 키멜(Jimmy Kimmel)을 언급했을 때, 그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를 언급하게 되면 그 의미나 맥락을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며 "애초에 균형이 맞지 않는 저울 위에서 싸우는 셈"이라고 예를 들었다. 

    이어 "심사 과정에서 같은 아시아인 사이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심해 논쟁을 벌이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아시아 각국이 서로의 문화적 뉘앙스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우리는 글로벌 무대에서 서구 중심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아시아 내부에서도 서로의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다면 아시아 대표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 ▲ 2025 원 아시아 심사위원단. 조 디(Joe Dy) VML 마닐라 CCO(좌측). ©2025 ONE Asia(윤용기 포토그래퍼)
    ▲ 2025 원 아시아 심사위원단. 조 디(Joe Dy) VML 마닐라 CCO(좌측). ©2025 ONE Asia(윤용기 포토그래퍼)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각국이 진정한 의미의 연대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디 CCO는 "필리핀 크리에이티브 업계는 분명 경쟁이 치열하지만, '필리핀 크리에이티비티의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자'는 공통된 목표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며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나라라 할지라도, 아시아 각국이 진정한 의미의 연대를 이뤄야 글로벌 무대에서 아시아의 대표성을 알리고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크리에이티브들에게 "요즘 광고업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다시 우리가 하는 일을 재밌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인정이나 돈 보다는, 여러분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을 좇아야 한다. 성장이 결국 우리를 훨씬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의미있는 조언을 건네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매년 주요 거점 시장을 순회하는 원 아시아 심사위원단은 지난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 모여 심사를 진행했다. 원 아시아 최종 수상자는 오는 11월 19일에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