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차별력 희미해지면서 브랜드의 인문학적 가치가 돈 버는 시대"파라타항공 브랜드 아이덴티티부터 네이밍, 디자인, 전략 수립까지 '브랜드 철학'에 기반"브랜드 철학, 멋진 이야기 꾸며내는 것 아니라 진짜 실천 담겨야"
  •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이제 제품에서 오는 차별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요한 건 브랜드가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태도와 표정으로 고객을 대하는가에 대한 문제죠. 훌륭한 브랜딩은 브랜드가 가진 '진짜(authentic)' 철학에서 나옵니다." 

    세상에 없던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일은, 세상에 없던 브랜드 철학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무수한 브랜드들의 경쟁 속에서 신규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존 브랜드가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제 제품력이나 서비스에서 오는 차별력이나 변별력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모방되고, 서비스 혁신은 곧 보편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가 한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힘은 '무엇을 파는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주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돼야 한다. 브랜드 철학의 힘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브랜드브리프는 이달 신규 취항을 앞둔 파라타항공(PARATA AIR)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부터 네이밍, 디자인 등 종합적인 브랜딩을 담당한 엘레멘트컴퍼니의 최장순 대표를 만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견한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파라타항공은 생활가전 업체 위닉스가 플라이강원을 인수하며 출범한 국내 9번째 저비용항공사(LCC)로, 기존 항공 산업의 비합리성을 깨고 '고객 중심 철학'에 기반한 합리적 요금 체계와 차별화된 서비스 경험을 제공해 새로운 시장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장순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닉스를 제습기 회사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항공업을 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에 앞서 먼저 위닉스라는 회사에 대해 깊이 공부하면서 일관된 사업 히스토리에 주목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제습기와 공기청정기를 중심으로 한 클린 에어(clean air) 사업, 자체 미디어 콘텐츠 스트리밍을 퍼포스 에어(purpose air), 항공업을 스마트 에어(smart air)로 구분해 보니, 위닉스 사업의 역사에서 에어(air)라는 하나의 흐름을 발견했다"며 "고객 행복을 위해 더 나은 에어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한축의 서사를 완성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그렇게 파라타항공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스마트 에어 솔루션(Smart Air Solution)'으로 정립하고, 브랜드 네이밍에 착수했다. 

    최장순 대표는 "1000개 이상의 이름 후보군을 만들었다"며 "대형 항공사나 유명 외항사의 경우, 지역명이나 국가명을 브랜드 이름에 넣은 경우가 많다보니 더 차별화 하면서도 한 번 보면 각인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 그 변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항공사(NEW PARADIGM OF TRAVEL NEW AIRLINE TO LEAD IT)'라는 브랜드 목표를 중심으로 무수한 조합과 아이데이션을 거치면서 '파라타'라는 이름이 확 들어왔다"며 "'파라타'는 '선명하게 푸르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동시에 이탈리아어로 '퍼레이드'라는 의미도 있다. 퍼레이드 축제 행렬 같은 즐거운 여행이 '행복한 여행 파트너'라는 브랜드 콘셉트에도 잘 부합해 최종적으로 브랜드 이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파라타항공의 브랜드 컬러 팔레트는 브랜드 슬로건인 'Fly New'에 기반해 완성됐다. 고객에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가치를 다양한 '하늘색'으로 담아냈다. 

    최 대표는 "우리는 보통 하늘색이라고 하면 푸른색만을 떠올리지만, 원시부족인 '힘바족'은 푸른 하늘부터 흐린 하늘, 까만 밤하늘, 동트기 전의 하늘, 일몰 때 핑크빛으로 변하는 하늘까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색을 통틀어 하늘색이라고 부른다"며 "이를 항공업적 맥락에서 봤을 때, 단순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의 이동만을 딱 분절해서 비행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힘바족의 '하늘색'처럼, 비행을 하면서 겪는 모든 과정은 분리되지 않는 살아있는 연속체와 같다. 이를 브랜드 컬러 팔레트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 ▲ 파라타항공 브랜드 로고 및 항공기 리버리 이미지. ©파라타항공
    ▲ 파라타항공 브랜드 로고 및 항공기 리버리 이미지. ©파라타항공
    파라타항공의 브랜드 컬러 팔레트는 보색 관계만을 고려한 일반적인 브랜드들과 달리, 클리어 스카이 블루부터 다크 나이트 블루, 미드 나이트 블루, 선셋 핑크까지 비행을 하면서 고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모든 하늘의 연속적인 색상을 담았다. 거기엔 여행 출발 직전의 기대와 설렘부터 즐거움, 고립감, 멜랑콜리함 등 고객이 비행 중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브랜드 CI는 'PARATA' 철자에 있는 세개의 A를 '새'로 형상화해 'A-Bird'라 불리는 심볼로 표현했다. 로고의 모습은 'A-Bird'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을 시각화해 차별화된 서비스로 여행 경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뢰할 수 있는 항공사라는 브랜드 철학을 표현했다.
  •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파라타항공의 브랜딩은 유행이나 트렌드를 반영하는 대신, 집요하리만큼 브랜드 철학과 서사에 집중했다. 도파민과 밈(meme,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문화 요소), Z세대의 바이럴에 좌우되는 인기를 좇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브랜딩의 기초 공사에 온 힘을 쏟은 것이다. 

    최장순 대표는 "브랜드 철학이나 브랜드가 공동체에 제공하는 인문학적 가치가 직접 매출을 끄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부분이 결여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매출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됐다"며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철학은 그럴싸한 멋진 이야기를 엮어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진짜로 실천하고 있는 철학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항공업에 있어 '진짜' 브랜드 철학은 비행기가 고장나지 않는 것, 연착되지 않는 것, 비행 중 추울 때 따뜻한 담요를 바로 나눠주는 것과 같은 것처럼 고객이 원하는 타이밍에 알맞은 솔루션을 주는 것"이라며 "진짜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포장만 하려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다 알아본다. 그런 점에서 파라타항공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브랜드"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으로, 윤철민 파라타항공 대표이사와의 대화를 꼽았다.

    그는 "윤철민 대표와 함께 하는 브랜드 관련 회의에서는 항상 최종 판단의 기준점이 '고객 만족'과 '행복'이었다"며 "마치 최종 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장이 소비자인 것처럼 집착적일만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윤 대표의 관점과 빠른 실천 속도에 놀랐다"고 했다.

    비행 중 갑자기 창문을 왜 올려야 하는지, 기내식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왜 요금을 똑같이 내야 하는지, 여자 승무원들은 왜 불편한 치마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지와 같은 자연스러운 궁금증에 대해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최 대표는 "파라타항공은 이러한 기존 항공산업의 폐단과 비합리성을 고객 중심 철학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임직원 또한 내부 고객으로 보고, 그들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승무원 유니폼도 치마 대신 바지를 도입했다"며 "많은 기업들이 처음에는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지만 결국엔 영업이익과 같은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이상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파라타항공은 계속해서 그 철학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여행가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날씨다. 하늘이 파란 맑은 날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며 "사람들이 파라타항공을 볼 때마다 그런 여행의 설렘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고, 파라타항공이 사람들의 '행복한 여행 파트너'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 ©서성진 기자
    엘레멘트컴퍼니는 파라타항공 외에도 구찌, CJ, 마켓컬리, LG전자, 크래프톤, NH투자증권, 현대자동차 등 국내외 기업의 브랜드 철학 및 전략을 수립하고 다양한 경험 솔루션을 개발해왔다. 각 브랜드는 다른 비즈니스 영역과 브랜드 목표를 가졌지만, 엘레멘트컴퍼니의 접근법은 언제나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다. 기호학부터 언어학, 인류학, 철학의 개념을 크리에이티브와 결합시켜 브랜드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엘레멘트컴퍼니만의 전매특허로 꼽힌다.

    최장순 대표는 "요즘 많은 기업들이 트렌드와 유행을 따라가려고 하고, 모든 산업의 방향은 Z세대를 향해 있는 듯 하다"며 "이를 세대론에서 오는 역차별이라고 본다. 산업의 기틀을 만든 것도, 그 산업이 돌아가도록 돈을 쓰는 것도 선배 세대인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든다. 엘레멘트컴퍼니는 이러한 전체적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트렌드를 막연히 좇기보다는 그게 왜 유행하는지,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며 "AI(인공지능) 시대에도 대체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다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문학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이제는 이러한 가치가 돈을 버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고 역설했다.

    엘레멘트컴퍼니는 그 고유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단순 에이전시에 그치지 않고 '지식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가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전직원들이 함께 모여 배우고 싶은 주제에 대한 글이나 논문을 읽고 토론을 벌이며, 각 분야별 '바이블'로 꼽히는 도서는 두루 섭렵하는 등 내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 대표는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들의 '행복'은 지식의 충만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행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며 "언젠가 시간이 흘러 엘레멘트컴퍼니 구성원이 모두 시니어가 됐을 때에도 브랜딩 씬(scene, 분야)에서 퇴물 취급 받으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레벨을 보여줄 수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지식 산업을 펼쳐나가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