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외환 불확실성 확대 우려 … 가용 수단 적극 활용”외환당국 구두개입 후 원·달러 환율 20원 이상 급락한은·기재부 시그널에 실개입 추정까지…당국 방어 의지 부각개입 효과 단기 그칠 경우, 환율 1470원대 되돌림 가능성도
  • 원·달러 환율 1480원선 돌파 위기 속에 한국은행 총재와 경제부총리가 연달아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장중에는 실제 개입으로 보이는 달러 매도세까지 등장하면서 외환시장이 '전면 진화 국면'으로 전환됐다. 당국의 의지가 확인되자 환율은 20원 가까이 급락하며 시장을 뒤흔들었다. 달러 강세 기조 속에 당국이 과열 진화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대비 10.7원 하락한 1457원에 마감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종가(1467.7원) 대비 4.2원 오른 1471.9원에 출발한 뒤 상승 폭을 키우며 오전 9시 직후 1474.90원까지 치솟았다. 달러 강세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 등 대내외 여건상 1480원 돌파 우려가 커지던 시점이다.

    그러나 오전 9시 17분께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적극 활용하겠다”며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내놓자 시장 흐름은 즉시 뒤집혔다. 

    발언 직후 호가창에는 대규모 달러 매도 물량이 등장했고, 외환당국의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으로 추정되는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환율은 불과 몇 분 만에 1459.0원(-15원)까지 수직 하락했다.

    하락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도세가 이어지며 환율은 1455.9원까지 추가로 밀렸고, 오전 9시 53분 기준으로는 전날 주간종가 대비 8.9원 내린 1458.8원에 거래됐다.

    이날 환율이 이처럼 큰 폭으로 밀린 것은 대내외 여건만 놓고 보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판단이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1480원 돌파 가능성이 높아지던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당국이 과열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조치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셧다운(예산부족에 따른 업무정지) 해제로 그간 공개가 미뤄졌던 주요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발표될 예정이어서, 투자심리 위축과 변동성 확대에 대한 경계가 커졌다. 여기에 셧다운 기간 동안 축적됐던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의 매파적(긴축 선호) 발언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 가능성은 50% 수준까지 높아졌다. 이는 달러 강세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급등세를 보이던 환율 흐름에 가장 먼저 제동을 건 인물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였다. 앞서 이 총재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시장이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우리는 변동성을 주시하고 있으며 환율이 과도하게 움직일 경우 개입할 의향이 있다"고 말해 외환시장 구두개입에 나섰다.

    결국 이창용 총재의 선제 경고, 구윤철 부총리의 구두개입, 실개입 추정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당국의 환율 방어 의지가 시장에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개입 신호가 시장에 강하게 작용한 만큼, 정부는 후속 안정 조치 마련에도 착수한 모습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외환·금융당국은 환율상승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국민연금과 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주체들과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미 간 '외환시장 안정' 합의가 명문화된 점도 환율 안정에 긍정적 요인으로 거론된다.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2000억달러 대미 투자 이행 과정에서 "한국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별도 항목으로 담겼다.

    미국은 어느 특정 연도에도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조달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명시했고, 한국은 시장 매수 방식이 아닌 대체 조달을 통해 환율 영향 최소화에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투자 이행 과정에서 시장 불안이 예상될 경우 조달 시점이나 규모 조정을 한국이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도 확인되면서, 자금 조달이 단기간 환율 급등으로 이어지는 위험은 일부 완화됐다는 평가다.

    다만 조정 요청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신의 있는 검토" 수준에 그쳐 실제 구속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당국의 개입 효과 역시 단기에 그칠 경우 환율이 다시 1470원대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구두개입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나려면 실제 정책 대응이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일시적 효과에 그친다면 변동성 확대 뿐 아니라 연말·연초 환율이 1500원대에 진입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