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영풍·전자계열, 최씨 비철·제련 '독립경영'환경문제 떠넘기기 불씨 … 지분 희석 놓고도 정면충돌영풍, 사모펀드 MBK와 손잡고 경영권 확보전 돌입5兆 '쩐의 전쟁'으로 비화 … 산업계 이목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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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장형진 영풍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국내 비철·제련 산업의 맏형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1년을 넘기며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선언으로 본격화한 갈등은 수조원대 자금 소모와 20여 건의 소송, 기업가치 훼손 등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전략 광물 공급망을 책임지는 국내 유일의 제련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와 안보 리스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3라운드’가 예고된 가운데, 본지는 총 6편을 통해 75년 동업의 균열부터 향후 관전 포인트까지 분쟁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고려아연과 영풍 간 75년 동업 관계가 산산조각난 지 1년이 넘었지만, 경영권 쟁탈전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파국을 향하고 있다. 한때 국내 패밀리 비즈니스의 모범사례로 꼽혔던 두 가문의 협력 구도는 2010년대 후반 카드뮴 및 황산 처리 등 환경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갈등이 시작된 후 2020년대 들어 균열이 격화했고, 지난해 사모펀드까지 가세한 대규모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했다.신사업 추진을 둘러싼 경영 철학 차이, 영풍의 지분 희석 우려, 독립경영 개입 논란이 겹치며 한국 기업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기전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국내 비철금속 산업의 핵심기업인 고려아연의 운명을 건 이 분쟁은 국가적 전략광물 공급망 안보까지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로 평가되고 있다.장씨·최씨 두 가문의 70년 넘은 동업 … 어디서부터 어긋났나영풍과 고려아연의 동업 관계는 1949년 고(故) 최기호·장병희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한 이후 3대에 걸쳐 유지됐다. 장씨 일가는 ㈜영풍과 전자 계열을, 최씨 일가는 비철금속·제련 분야를 맡아 70년 가까이 큰 충돌 없이 지속된 이 구조는 국내 제련산업 성장의 기반이자, 가족 경영의 안정적 사례로 꼽혔다.그러나 2010년 후반 영풍 석포제련소의 카드뮴 처리를 둘러싼 갈등을 시작으로 고려아연과 영풍 간 이견이 커졌고, 2022년 최 명예회장 손자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대표이사 회장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최 회장이 ESG 경영을 내세우며 환경오염물질 처리를 거부한 데 이어 2차전지·신재생·해외 광산투자 등 대규모 신사업을 추진하자 양측의 시각차가 뚜렷해졌다. 경영 리스크 관리와 성장 투자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면서 동업 체제 자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갈등의 발단에 대해 영풍 측은 ‘최윤범 회장이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일방적으로 유상증자를 추진, 우군 지분을 늘리며 동업자 정신을 해쳤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 취임 이후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 및 매각 등 방식으로 한화와 LG, 현대차 등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였고, 영풍은 16%의 지분 가치가 희석됐다는 것이다.영풍 측은 또 최 회장이 주도한 투자들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미국 폐전자제품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를 5800여억원에 인수한 점을 비롯해 최 회장이 중학교 동창인 지창배 회장이 설립한 원아시아파트너스에 약 5600억원 투자, 원아시아파트너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관여 등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설명이다.반면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동업자 정신을 깨고 고려아연에 경영 개입을 시작한 것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특히 영풍 석포제련소의 온갖 환경문제를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 측은 3자배정 유증에 대해 “글로벌 전략 광물 공급망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면서 영풍은 환경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경영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또 국내 굴지 대기업이자 첨단산업을 이끌어가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은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와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인데도 영풍이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풍 측이 비판하는 미국 폐전자제품 재활용업체 인수와 관련해서도 인수 후 시너지 등이 본격화되면서 실적이 반등하고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는데도 관련 분야에 대한 사업경험이 전무한 영풍이 사업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영풍–MBK파트너스 주주협약… 사모펀드 가세한 '쩐의 전쟁'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지난해 3월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다. 이때 최 회장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에 나섰다. 고려아연 정관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외국 합작법인’에 한해서만 허용하는데, 이를 삭제하자는 안건을 낸 데 영풍은 이에 반발했다. 영풍이 반대하면 부결될 수밖에 없던 사안이었지만, 영풍은 이때 큰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분쟁은 지난해 9월 초유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영풍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한 것으로, 추석 연휴를 앞둔 평화로운 금요일 MBK 연합의 ‘기습공격’에 고려아연은 물론 여의도 증권가를 시작으로 산업계 전반이 충격에 빠졌다.영풍은 MBK파트너스에 지배력과 경영권을 모두 넘기더라도 공동경영 시대를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장악 또한 분쟁이 아니라 당시 고려아연 지분 33.1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라는 입장이다.고려아연은 즉각 반발했다. 비철금속 제련업에서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추고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경영권 찬탈에 나선 것이라 비판하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경영권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경영권 분쟁은 ‘치킨 게임’으로 번졌다. 공개매수 선언 직전 55만6000원이던 고려아연 주가는 90만원까지 치솟았고, 양측의 공개매수 가격도 수차례 상향 조정됐다. 당초 2조원으로 예상됐던 쩐의 전쟁은 5조원이 투입된 채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났다.업계 관계자는 “70년 가까이 큰 충돌 없이 유지된 가족 동업 체제가 붕괴된 사례인데다 사모펀드 참여로 적대적 M&A가 현실화된 분쟁으로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면서 “영풍 측이 장기전을 예고, 소모적 분쟁 속 기업 경쟁력 약화가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