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 기대 꺾은 이 총재 발언 이후 금리 급등, 기업 자금시장까지 충격시장 불안 외면하다 국고채 1.5조 매입 … '사후 대응' 논란RP 제도 핑계에도 시장은 사실상 개입으로 해석내년 58조 만기 앞두고 총재 신호 관리 능력 도마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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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년 3개월 만에 국고채 단순매입 카드를 꺼냈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3%선을 넘나들며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린 이후에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이 총재는 공식적으로 '제도상 보유 물량 확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뒤늦은 개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9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5년·10년·20년 만기 국고채를 대상으로 최대 1조 5000억원 규모의 단순매입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국고채 단순매입은 2022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글로벌 긴축 여파로 금리가 급등하자 비교적 빠른 시점에 시장 안정 목적으로 개입했다. 반면 이번에는 국고채 3년물이 이미 연 3%를 넘어서고, 회사채 시장까지 흔들린 뒤에야 뒤늦게 매입에 나섰다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은 더욱 냉랭하다.실제로 채권시장 불안은 상당 기간 방치됐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0월 중순 2.4%대에서 불과 한 달여 만에 3.03% 수준까지 치솟았다. 기준금리 2.50%와의 금리차는 50bp를 훌쩍 넘겼고, 10년물도 3.4% 안팎에서 고착화됐다. 시장은 이미 '금리 인하 사이클 종료'를 넘어 긴축 장기화 가능성까지 반영하는 단계로 진입했다.이 같은 급등의 출발점에는 이 총재 본인의 발언이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0월 기준금리 동결 이후 이 총재는 외신 인터뷰에서 "인하의 속도와 폭, 방향은 데이터에 달렸다"고 언급했고, 이는 곧바로 '인하 중단' 신호로 시장에 번역됐다. 이어 통화정책 결정문에서 '인하 기조'라는 표현마저 삭제되며 금리 상방 기대는 사실상 굳어졌다. 총재의 언어가 시장을 자극했고, 그 후폭풍을 시장만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그 결과 국고채 금리 급등은 곧바로 기업 조달시장으로 번졌다. AA- 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는 3.5%선에 근접했고, BBB급 비우량채는 9%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크레딧 스프레드도 빠르게 확대되며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가파르게 불어났다. SK텔레콤과 KCC글라스는 회사채 발행을 연기했고, HDC·SK온 등은 발행 규모를 대폭 줄였다. 일부 기업은 CP와 전단채로 급히 유동성을 돌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상황이다.여기에 환율이 1470원대까지 치솟고 외국인의 국채 선물 매도까지 겹치며 금리 상방 압력은 한층 더 증폭됐다. 최근 채권 투자자의 최대손실률(MDD)은 6%를 넘어 코로나 이후 최대 폭 손실을 기록했다. 증권사 채권 운용 손익도 빠르게 악화되며 실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은 이미 "경고 단계를 넘어 충격 구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이 총재는 최근까지도 "아직 시장에 개입할 단계는 아니다"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국고채 매입에 대해서도 한은은 "RP 제도 변경으로 일정 수준의 국고채 보유가 필요해 매입에 나선 것일 뿐"이라며 시장 안정 목적과는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시장 불안이 임계점에 도달하자 결국 국고채 단순매입이라는 수단을 꺼낸 것이라는 시장의 해석이 지배적이다.문제는 이번 매입이 일회성에 그친다면 이미 깊어진 불안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상반기에만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58조원에 달한다. 국고채 금리가 고점 부근에 머물 경우 차환 리스크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총재의 통화정책 메시지가 다시 시장을 자극할 경우 채권시장은 또 한 번 급격한 변동성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단순매입) 목적이 금리 변동성 완화라면 이는 한은이 커뮤니케이션 오류를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며 "과거 사례에 비추어보면 한은의 숨은 의도가 금리 변동성 완화이더라도 단순매입의 금리 하락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국고채 3% 공방은 이 총재의 통화정책 신호 관리 능력에 대한 시험대로 번지고 있는 분위기다. 정책 신호가 될 수 있는 행위를 하면서 책임은 제도 뒤에 숨는 전형적인 행태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총재의 말이 시장을 흔들고, 뒤늦은 행동이 그 뒤를 쫓는 현재의 구조가 반복된다면 채권시장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채권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의 말 한마디, 문구 하나가 곧바로 시장을 움직이는 상황에서 뒤늦은 단순매입으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 주체가 뒤늦게 수습에 나선 셈"이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