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인하에도 환율 1470원대 고착, 한은의 선택지 좁아져이 총재 ‘데이터 의존’ 발언 이후 금리·채권시장 요동 … 정책 신뢰 흔들환율·집값·경기 삼중 부담 속 한국은 정책 공백 … 고금리 리스크만 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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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한국 금융시장은 안도 대신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 

    연준의 '온건 매파적 인하'로 시장의 추가 인하 기대가 커진 반면, 환율·가계부채·집값에 발 묶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움직일 수 없는 '정책 고립'이 더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4월 임기가 만료되는 이창용 총재의 정책 판단과 메시지 관리 실패가 환율·집값·경기 전반의 리스크를 키워 왔다는 비판도 고개를 든다.

    연준은 10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3.75~4.00%에서 3.50~3.75%로 0.25%p(포인트) 낮췄다. 한국 기준금리(2.50%)와의 격차는 최대 1.25%p 줄었다. 수치상으로는 숨통이 트인 셈이지만,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460~1470원대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달 장중 1477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고점에서 다소 밀렸을 뿐, 추세 전환의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이 총재의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이 불안을 키웠다는 지적이 재점화되고 있다. 그의 "금리 인하 경로는 데이터에 달려 있다"는 발언 이후 시장은 이를 사실상 인하 종료 신호로 해석했다. 이 때 글로벌 금리 상승세까지 겹치면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한때 연 3.0%선을 넘나들며 급등했다. 기준금리와의 괴리는 50bp 이상 벌어졌고, 회사채 시장으로 충격이 전이되며 AA급 3년물은 3.4%대 후반, BBB급은 9% 안팎까지 치솟았다.

    환율에 대한 해석도 논란을 키웠다. 이 총재는 최근 환율 상승의 주된 원인을 "서학개미 등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로 돌렸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 한은 자체 분석에서 환율 상승의 약 70%가 국민연금·기관투자가·개인의 해외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총재의 정책 조율과 신호 관리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집값 변수 역시 부담이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둔화됐지만, 핵심 지역을 중심으로 조정 속도는 더디다. 한은이 금리를 섣불리 내릴 경우 환율 불안과 함께 부동산 시장 재자극이라는 이중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 반대로 동결을 이어가면 가계 이자 부담과 경기 둔화 압력이 누적된다. 이미 가계대출 금리는 주요 은행 기준 연 5% 안팎에서 고착화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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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더해 성장 전망도 밝지 않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제시했다. 기존 예상보다 소폭 상향 조정된 수치지만, 같은 시점 대만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인 4.0%와 비교하면 격차는 여전히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내년 일본·미국 등 주요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일제히 상향한 반면, 한국만 2.2%에서 2.1%로 하향 조정됐다.

    문제는 이 모든 부담이 이 총재 임기 막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준은 인하를 단행했지만 속도 조절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한은은 환율·집값·물가라는 제약에 묶여 사실상 '정책 공백' 상태에 가깝다. 국고채 금리는 쉽게 내려오지 않고, 기업 자금 조달 환경 역시 개선 조짐이 뚜렷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미국의 완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고금리와 불확실성을 함께 견뎌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상황이 '연준 추종'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정책 선택의 난도 문제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한은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방향을 틀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신호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이 총재 교체 이후 경제 상황에 따라 1∼2회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내년 4월 한은 총재 교체 이후 경제 상황에 따라 1∼2회 인하가 있을 수도 있다"며 "하반기로 갈수록 기저효과가 약해져 경기 우려가 확산하면 한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금융시장 전문가는 "이 총재의 발언 하나하나가 시장을 자극해 왔고, 뒤늦은 수습으로 정책 부담만 키웠다"며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통화정책의 일관성과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