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반도체 투자 폭증 … 기존 자금 구조로는 지속 불가능SPC 논란 정면 돌파 … "금융 진출도, 지배구조 꼼수도 아냐""국가 경쟁력은 투자 속도가 좌우" 강조
  • ▲ SK하이닉스. ⓒ뉴데일리
    ▲ SK하이닉스. ⓒ뉴데일리
    SK하이닉스가 최근 불거진 첨단산업 투자 규제 완  논란과 관련해 사실상 대국민 설명문 성격의 장문 입장을 공개하며 직접 해명에 나섰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이번 논의가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AI) 확산 이후 근본적으로 달라진 반도체 투자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투자 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입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현실과 제도적 제약을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는 24일 자사 뉴스룸을 통해 "AI 수요 급증과 공정 미세화 가속에 따라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규모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9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당시 클린룸 1만평 기준 투자비는 약 7조5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말 가동에 들어간 청주 M15X의 동일 면적 투자비는 약 20조원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투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반면 회수 기간은 더 길어졌고 업황 변동성까지 확대되면서 기존 자금 조달 방식만으로는 안정적인 투자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이클 산업 특성상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지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기와 관계없이 선제 투자와 연속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이번 논의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기업들이 활용해온 자체 현금, 차입, 유상증자 중심의 자금 조달 방식만으로는 초대형·장기 투자가 요구되는 현 환경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는 "차입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질 경우 업황 변동 시 재무 부담이 급격히 확대되고 이는 신용등급 하락과 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져 장기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상증자 역시 기존 주주 가치 희석과 주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국내 시가총액 2위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 미칠 파장까지 고려해야 해 대규모 증자를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SPC(목적법인) 설립과 관련해 SK하이닉스는 금융업 진출이나 지배구조 개편 수단이라는 지적을 분명히 부인했다.

    SK하이닉스는 "SPC가 금융상품을 판매하거나 자산 운용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 단위 법인"이라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 심사와 승인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금산분리 훼손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아울러 "지주회사 체제 기업의 손자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반드시 100% 보유해야 하는 현행 규제 때문에 그동안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하는 첨단산업 기업만 외부 자본을 활용한 SPC 설립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점을 구조적 역차별"이라로 지적했다.

    이번 논의는 특정 기업의 편의를 위한 예외 적용이 아니라, 동일 산업 경쟁 환경 속에서 발생해온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개선이라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이미 프로젝트 단위 투자 구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 공장 건설 과정에서 글로벌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와 51대49 지분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해 약 300억달러(40조원 이상) 규모 투자 자금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인텔은 기술과 운영 주도권은 유지하면서도 자본 부담과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규모가 2019년 발표 당시 120조원 수준에서 최근 600조원 규모로 불어난 배경에 대해서도 SK하이닉스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용적률 상향으로 클린룸 면적이 확대된 데다, 건설비가 2019년 대비 약 1.4배 상승했고 첨단 미세공정 도입으로 고가 장비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면서 "향후 물가 상승과 기술 고도화 속도를 감안하면 투자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SK하이닉스는 규제 개선이 이뤄질 경우 자금 조달 구조가 보다 유연해져 필요한 재원을 보다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규모 투자를 둘러싼 의사결정 속도도 지금보다 빨라질 수 있고, 경기 변동이나 재무 부담 악화 등 외부 변수로 인해 투자 시기가 지연되거나 위축될 가능성 역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결국 자금 조달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공장 건설과 설비 증설을 포함한 첨단산업 투자 실행 속도 전반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일본 정부와 민간이 TSMC와 라피더스 지원을 위해 단기간에 수십조원 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불과 2~3년 만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가동에 나선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AI와 첨단 기술 경쟁이 본격화된 지금,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누가 더 빠르고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