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이어 바브엘만데브까지 동시 셧다운 위기JP모건 "유가 150달러 돌파·산업 전력망 순차 마비"韓 정유사 홍해 얀부항 무용지물 … 플랜B 가동 시급
  • ▲ 호르무즈 해협ⓒ뉴시스
    ▲ 호르무즈 해협ⓒ뉴시스
    중동 분쟁이 5주 차에 접어든 가운데, 이란 측이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를 상대로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을 겨냥한 공격을 준비하라고 압박하며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라는 세계 에너지 물류의 양대 해협이 동시에 봉쇄될 위기에 처하며 물리적 공급 부족의 압박이 다가오고 있다.

    1일 주요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이란발 전쟁 관련한 이슈로 유가는 주요 인사들의 발언에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 시각 31일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은 이란을 떠나는 것이며, 우리가 떠나면 유가는 폭락할 것"이라고 발언했고 직후 브렌트유는 배럴당 103달러 선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전쟁의 종료 시한은 기약이 없어 이란의 반응에 유가의 상승세가 다시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진정한 공포는 메인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대체 항로인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동시에 셧다운되는 사태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정유업계다. 업계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의 East-West Pipeline을 통해 홍해 연안의 얀부항으로 원유를 빼내는 우회 물류망을 핵심 대안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막히면 이 대안은 불가능해진다. 중동 지정학 전문 알 합투르 연구소는 "육상 우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글로벌 액체 석유 소비량의 약 20%와 막대한 LNG 무역망이 사실상 갇히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우선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시점에서 영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비용 폭탄도 현실화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막혀 유조선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강제 우회할 경우 중동에서 한국으로 오는 운항 일수가 최소 15일 이상 길어진다. 실제로 2023년 후티 반군이 상선 공격을 감행했을 당시 중동발 한국행 운항 일수가 최대 두 달까지 길어진 사례가 있다.

    이에 따라 원유 도입 비용은 상승한다. 운항 지연에 따른 막대한 선박 연료비 추가 지출은 물론, 중동 해역 진입 시 천정부지로 솟는 전쟁 위험 할증 보험료까지 고스란히 정유사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실제로 국제 유조선 운임지수(WS)는 이란 전쟁 발발 직전 대비 60% 가까이 급등한 상태다. 원유 도입 원가의 폭등은 결국 디젤, 항공유 등 석유 제품 가격 인상으로 전가돼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국가 산업 전반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JP모건의 브루스 카스만 글로벌 경제 책임자는 "해협 봉쇄가 한 달 더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50달러를 향해 치솟을 수 있다"며 "이는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산업용 전력 공급 마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라고 경고했다.

    원유 수급 마비와 도입 비용 급등이 맞물린 현재 상황을 두고 개별 기업의 대응 한계를 넘어섰다는 의견이 나온다.

    31일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중동 상황 대응본부' 일일 브리핑에서 정부 비축유 스와프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부 비축유를 민간 정유사가 대체 도입하기로 한 원유와 맞교환해 일시적인 수급 차질을 막겠다는 취지다. 양 실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들이 얼마나 대체 물량을 확보하느냐와 중동 사태가 언제 정리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협이 동시에 봉쇄되는 시나리오 앞에서는 이 같은 조치마저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대체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초유의 사태에 개별 기업이 각자 물량을 확보해 오라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기업에 위기 대응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해협 동시 봉쇄는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 1970년대 전 세계 경제를 마비시켰던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파장을 부를 수 있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비축유 스와프나 수동적인 상황 모니터링을 넘어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비상 원유 수급망을 확보하고 에너지 외교를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