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법인 검찰 고발·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도 10년 내 담합 반복시 과징금 2배·입찰 제한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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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쇄용지 담합 사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AI 이미지. ⓒ챗GPT
국내 인쇄용지 시장의 95%를 점유한 거대 제지사들이 지난 4년여간 은밀한 '가격 카르텔'을 형성해 폭리를 취해오다 덜미를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에게 역대급 과징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무너진 시장 가격을 정상화하기 위한 '가격 재결정'이라는 이례적인 처방을 내놨다.23일 공정위에 따르면 무림SP, 무림페이퍼, 무림P&P, 한국제지, 한솔제지, 홍원제지 등 6개사는 지난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가격 인상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담합을 숨기기 위한 수법은 치밀했다.조사 결과, 이들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나 식당 전화를 이용해 의사 연락을 주고받았다. 특히 가격 인상 통보 시 거래처의 반발과 의구심을 피하고자 업체 간 통보 순서를 정했는데 합의가 어려울 때는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순서를 정하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이러한 치밀한 공조 속에 담합 기간 국내 인쇄용지 판매가격은 평균 71%나 급등했다. 공정위는 이들이 코로나19와 중동 전쟁 등 대외적 위기를 틈타 원가 상승 부담을 출판사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며 부당 이득을 극대화했다고 지적했다.공정위는 이번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제지업계 담합 사건 중 최대 규모인 3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체별로는 한솔제지가 1425억원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배정받았으며, 가담 정도가 큰 한국제지와 홍원제지는 법인이 검찰에 고발됐다.특히 주목할 점은 '가격 재결정' 명령이다. 공정위는 담합으로 형성된 현재의 가격 체계를 무력화하기 위해 각 업체가 독자적으로 가격을 다시 정하고, 향후 3년간 그 내역을 반기별로 보고하도록 했다. 이는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20년 만에 처음 내려진 강력한 행정 조치다.이번 조치는 단순한 개별 사건 제재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담합 근절'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에서 "담합을 반복하는 사업자를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정부는 향후 공정거래법 및 개별법 개정을 통해 ▲반복 담합 시 등록 취소 및 영업정지 요청권 신설 ▲담합 관여 임원에 대한 해임·직무정지 명령 제도 도입 ▲10년 내 재범 시 과징금 최대 100% 가중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중동 전쟁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인쇄·출판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고, 교육비 등 국민 생활비 인상을 억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식료품 등 민생 밀접 분야에 대한 담합 감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
- ▲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공정위는 반복적으로 가격을 담합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보다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으로 처벌 수위를 높여 산업계에 뿌리 깊은 '카르텔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우선 과징금 가중 기준이 엄격해진다. 현재 '과거 5년 내 위반'이었던 기준을 '과거 10년'으로 대폭 늘린다. 10년 안에 단 한 번이라도 담합 전력이 있다면 과징금을 최대 100%까지 가중한다. 사실상 과징금을 두 배로 물게 되는 셈이다.담합 기업들의 방패였던 자진신고 감면(리니언시) 혜택도 줄어든다. 반복 담합 기업이 자진신고를 할 경우, 기존 1순위 면제 혜택을 50% 감경으로, 2순위 50% 감경은 25%로 각각 절반 수준으로 축소한다.담합을 주도하거나 묵인한 임원에 대해 해임 또는 직무정지를 명령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한다. 경영진이 바뀌지 않으면 담합 네트워크가 유지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영국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로, 국내 법체계에 도입될 경우 경영권에 상당한 파장을 줄 것으로 보인다.더 나아가 특정 사업 부문에서 담합이 반복될 경우, 해당 부문을 강제 매각(분리 매각)하도록 하는 '구조적 조치' 도입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기업의 팔다리를 잘라내서라도 담합의 고리를 끊겠다는 초강수다.가장 강력한 제재는 '시장 퇴출'이다. 공정위는 관계 부처에 반복 담합 기업의 등록·허가 취소나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에 일반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기업에 대한 압박과 동시에 피해자인 국민과 소상공인 보호책도 강화된다. 현재 위반행위를 중단시키는 용도로만 쓰이던 단체소송 제도를 손해배상 청구까지 가능하도록 확대한다. 담합 기업이 법적 소송 비용과 배상금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함으로써 불법 행위의 유인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주병기 공정위원장은 "담합은 혁신을 가로막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시장의 암세포"라며 "반복적 법 위반 사업자가 더 이상 시장에 발붙일 수 없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