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안정 위해 부양책 내놓지만 약발 대신 인플레 자극 … 양극화에 서민 시름 노봉법 갈등에 기업들 '인력 리스크' 줄이기 골몰 … 고용 축소 부메랑 현실화 "소수기업 이익 점유율 급격히 높아지는 국면서 경기 위축 국면 연계 경향"일부 산업이 전체 경기 견인 … "반도체, 고용·내수 낙수효과 제한적"
  • ▲ 고유가 피해지원금 1차 지급이 시작된 27일 광주 남구 한 주유소에 지원금 사용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 고유가 피해지원금 1차 지급이 시작된 27일 광주 남구 한 주유소에 지원금 사용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경기 방어를 위해 확장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물가 상방 압력을 키우면서 경기 부양과 물가 방어가 충돌하고 있다. 고물가 장기화로 실질 구매력이 약화되면서 소비심리는 빠르게 얼어붙었고 국내 소비자 경기 전망은 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시행 이후 본격화된 '춘투(春鬪)'까지 겹치면서 산업 현장은 '일촉즉발' 긴장 국면에 들어섰다. 노동 리스크 확대는 기업의 비용 부담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키우며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우려가 불거진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호황에 기대는 '나홀로 성장'이 이어지는 사이 비정보기술(IT) 업종은 수요 부진과 수익성 악화에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며 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금통위 "가격보조 정책, 시차 두고 물가 상방압력"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재정모니터' 보고서에서 "과도하게 확장적인 조치들은 인플레이션을 장기화하고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강요해 경제 활동을 저해할 위험을 높인다"며 "물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재정지원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정하고 일시적 조치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 비율이 상당폭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로 한국과 벨기에를 꼽았다. IMF는 "벨기에와 한국은 상당한 부채 비율 증가가 예상된다"며 "2031년까지 벨기에는 GDP의 122%를 초과하고 한국은 63%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명 정부가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재정지출은 753조원까지 확대됐다. 전년 대비 증가율만 11.8%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그간 대외적으로 추경이 물가를 자극할 우려에 선을 그어 왔지만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선 추경이 물가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제7차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 10일 열린 금통위에서 일부 위원은 "이번 추경이 각종 가격보조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이라면서도 "가격보조 정책은 일시적으로 사용가능한 정책으로 물가 상승압력을 이연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물가의 상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추경이 공급 측 충격에 대응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도록 정부에 한은의 입장을 잘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는 고유가와 고환율 국면에서 추경을 투입하는 것은 '민생 안정'이라는 정책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동성이 증가하면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결국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며 "추경 지원을 받은 계층이 상승한 물가로 더 큰 부담을 겪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고물가 장기화로 실질 구매력이 약화되면서 4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1년 만에 '비관적'으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의 4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9.2로 전월보다 7.5포인트(p) 하락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이후 최대 낙폭으로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서 경기가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소비자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8일 CU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영호남권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8일 CU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영호남권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노봉법 투쟁 리스크에 일자리 축소 부메랑
    내수가 경고등을 켠 상황에서 노봉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며 성장 잠재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비 심리 위축이 수요 측면의 부담이라면 노봉법 제도적 결함으로 인한 산업 현장의 혼란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들이 법적 리스크를 고려해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의 역동성이 저하될 수 있다. 

    노봉법은 파업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고 사용자인 원청의 교섭 책임 범위를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취지와는 달리 '고용 양극화'라는 부작용이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실제 외주인력 시장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500대 기업중 432개사의 소속 외 근로자는 2023년 72만4331명에서 노봉법이 공포된 지난해에는 66만4845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전체 근로자 수가 2023년 163만6571명에서 지난해 168만2397명으로 2.8% 증가했지만 외주 인력만 뒷걸음질 친 것이다. 

    기업들이 노봉법 시행을 앞두고 외주 인력 비중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고용 구조를 개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규제의 역설'이다. 법 시행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자 외주 인력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특히 업황 부진을 겪었던 산업들을 중심으로 외주인력 감소폭이 컸다. 건설·건자재(-23.4%), 석유화학(-34.8%), 2차전지(-33.5%), 철강(-11.6%) 등에서 외주인력 이탈이 두드러졌다. 특히 2차전지는 소속 근로자가 8.8% 늘어나는 가운데 소속 외 인력만 줄어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최근 CU 진주물류센터 앞 화물연대 집회 때 발생한 사망 사고는 다단계 위탁 계약 구조와 사용자성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개인사업자 문제로 보고 선을 그었지만 노동계는 '진짜 사장'의 책임을 물으며 공세 수위를 높이며 원청 BGF리테일에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과거에는 불법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아 동력이 약했던 원청 대상 투쟁은 노봉법 시행 이후 정당한 권리 행사로 인식되며 기업 경영의 상시적 리스크로 부상했다. 노조가 상대적으로 사용자성 인정이 쉬운 안전 관리 책임을 고리로 원청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낸 뒤 임금 인상이나 직접 고용 같은 핵심 요구안을 관철시키려 할 공산이 높아졌다. 
  • ▲ SK하이닉스.ⓒ연합뉴스
    ▲ SK하이닉스.ⓒ연합뉴스
    ◇산업 간 양극화 심화하며 구조적 불균형 고착화 
    반도체 수출 호황 등 일부 산업이 전체 경기를 견인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산업 간 양극화도 심화하는 '성장의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반도체가 슈퍼사이클에 진입하며 수출 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낙수 효과가 타 산업이나 내수 시장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부 산업의 회복이 경제 전반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약해지면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IT 제조업과 여타 산업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 격차는 2024년 하반기 5.0%포인트(p)에서 지난해 상반기 8.2%p, 3분기 9.5%p까지 벌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연간 성장률은 2.0%이나 IT 제조업을 제외하면 1%대 초중반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체 노동시장은 임금 상승률이 둔화되고 고용 여건은 후퇴하는 흐름으로 극심한 양극화가 반도체 및 수출 호황을 가리고 있다"며 "반도체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기업 수익이 전체를 끌어가고 있을 뿐 수출과 내수 그리고 기업 규모별로 채산성과 자금 사정은 이미 상당히 다른 흐름을 보여 준다"고 진단했다. 

    이어 "극심한 양극화와 신용위험 현실화는 결국 경기사이클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며 "과거 우리나라 경기사이클을 보면, 소수기업의 이익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국면이 경기 위축 국면과 연계돼 있다"고 짚었다. 

    이처럼 산업 간, 기업 간 격차 확대에 정부도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기업 사장단과 만나 "제2·제3의 반도체 산업이 나타날 수 있도록 혁신을 거듭해달라"고 당부했다. 반도체 중심의 성장 구조에서 벗어나 성장 동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발언으로 풀이된다. 또 지난 23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와의 상견례에서도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채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산업 양극화는 결국 가구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상위 20% 소득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것으로 소득 격차 지표인 '균등화 처븐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지난해 4분기 5.59배로 1년 전(5.28배)보다 확대됐다. 

    이 지표가 4분기 기준으로 악화한 것는 통계를 개편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상위 20%-하위 20% 소득 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4분기 적자가구 비율은 25%로 2019년 이후 가장 높았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생산량 대비 고용 창출 효과가 적고 수출 중심 사업으로 내수나 고용으로 확산되는 낙수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반도체 생태계에 속한 계층은 소득이 증가하며 그 외 계층과 격차가 확대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산업은 사이클 산업인 만큼 업황 둔화를 대비해 어떤 정책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