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업적 합리성' 검증 못 박았으나 '원리금 회수 '장담 못해 日 '경제 안보·시너지' 관점서 대미 투자 프로젝트 韓보다 먼저 확정 韓, 상업성 잣대 발묶인 사이 경제안보 등 전략적 가치 기회 놓칠 판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
    정부가 총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가이드라인으로 '투자 원리금 회수'라는 엄격한 잣대를 꺼내 들었다. 손실 위험이 있는 사업은 애초에 배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학계와 업계에선 우려가 가득하다. 미국 현지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전에 수익성을 완벽히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쟁국인 일본처럼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이라는 거시적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깐깐한 수치 계산에만 매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0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 운영·관리 특별법 시행령안'을 의결했다. 오는 18일 본격 시행되는 '한미전략투자특별법'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시행령의 핵심은 대미 투자의 자격 요건인 '상업적 합리성'을 수치로 명문화한 점이다. 정부는 개별 투자 사업의 예상 존속기간 동안 한국이 벌어들일 총수입이 '투자 원리금(원금+이자)'을 모두 충당할 수 있는 경우에만 투자를 허용하기로 했다.

    투자 시점의 '2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에 한미 양국이 협의한 '가산금리'를 더한 수준으로 정해진다. 현재 미국 20년물 국채 금리가 5% 안팎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연 5% 이상의 확실한 수익률이 보장되는 프로젝트만 선별해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이를 심의하기 위해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한미전략투자 운영위원회'가 컨트롤타워로 서고, 그 아래 재무·외환·안보·공급망 등을 검토할 전문위원회와 소위원회가 촘촘히 구성된다. 이번 특별법으로 설립되는 '한미전략투자공사'의 운영 기간은 20년으로 확정됐다.

    "현지 정보 제한적인데…" 원리금 회수 장담 못 하는 이유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대규모 해외 인프라 투자의 특성상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걸림돌로 '정보의 비대칭성'과 '시간 부족'을 꼽는다. 미국 현지의 복잡한 주(州)별 규제나 여건을 파악해야 하는데, 미국 측이 핵심 내부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 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정밀한 검토가 필수적이지만 투자 회수 기간조차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적 합리성만으로 대상을 고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국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사업도 막상 뚜껑을 열면 적자가 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미국 현지 사업의 수익성을 사전에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현재 대미 투자 1호 후보군으로는 루이지애나주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소형모듈원전(SMR), 신규 원전 건설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 까다로운 '상업성 현미경 검증'을 통과해야 하므로 구체적인 윤곽은 내달 이후에나 드러날 전망이다.

    일본은 '전략 자산' 선점 … "단기 수익보다 미래 가치 봐야" 

    더 큰 문제는 한국이 '연 5% 수익률'이라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경쟁국인 일본은 이미 미국 핵심 공급망의 심장부를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미 오하이오 가스발전소(330억달러), 조지아 합성다이아몬드 공장(6억달러) 등 굵직한 1호 프로젝트를 확정 지었다. 겉보기엔 단순 제조·발전 시설 같지만 내막을 보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전력 공급망을 쥐고, 반도체 필수 소재(합성다이아몬드) 시장을 선점하는 '경제 안보형 투자'이다. 2호 프로젝트 역시 400억달러 규모의 SMR 사업 등으로 철저히 전략적 시너지에 맞춰져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일본의 투자를 두고 "일본은 수익을 얻고, 미국은 전략적 자산과 에너지 주도권을 얻는 구조"라며 극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전문가들은 대미 투자의 본질이 '돈벌이'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자국 중심으로 제조업과 방산 공급망을 재편하는 격변기 속에서 지나치게 단기 수익성에만 집착하다가 한국 기업들이 공급망 생태계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미 투자는 원리금 회수보다 경제 안보, 공급망 안정, 미국 방산·제조업 시장 내 한국 기업의 참여 기회 확대 등 '전략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며 "상업성에만 묶여 있다간 장기적인 국가 실리를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태황 교수 역시 "상업적 합리성도 중요하나 미국과의 경제동맹과 미국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사업 환경 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단기 이익 실현에 그치지 말고 해당 기업이나 프로젝트의 미래 가치가 크다면 장기 투자로 이어갈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