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평가 항목·목표달성률로 과당경쟁 유발상품 신규 가입 비중 지나쳐, 금융 공공성 뒷전

  • 은행들이 경영 화두로 수익성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 가운데 직원들의 영업 압박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실적 증대를 위해 100개에 달하는 핵심성과지표(KPI), 잦은 캠페인과 프로모션으로 직원들을 옭아매면서 은행권 과당경쟁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은행 8곳의 KPI 항목이 최소 42개에서 최대 97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이 영업점 실적을 평가하는 성적표 항목들이 지나치게 많은 셈이다. 

    KPI는 도입 초기만 해도 대규모 영업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점수를 높여 은행 단기 실적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평가 항목이 지나치게 많고 과도한 목표 달성율을 적용하다보니 타 은행은 물론 내부 경쟁 심화로 직원들의 불안감까지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주요 은행들의 KPI 항목을 살펴보면 수익성 강화 관련 비중이 지나치게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보호나 사회공헌 활동보다 신규 가입자 확보 여부만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었다.

    9개 주요 은행 전체 KPI 항목(548개) 가운데 상품 신규 가입 관련 지표가 차지하는 비중만 62.6%에 달했다.

    주로 펀드, 방카슈랑스, 신탁, 통합멤버십, ISA 신규 가입을 점수화하는데 이 항목들의 목표달성률은 대부분 130~180%로 설정돼있다.

    은행들의 경영 전략과 맞물린 비이자이익·디지털·정책금융 부분에서 실적을 내기 위해 초과 달성률을 제시하고 밀어붙이기 영업 방식을 고수하는 셈이다.

    KPI 항목 달성 뿐만 아니라 이벤트, 프로모션도 주기적으로 이뤄진다. 

    올해 상반기에도 K은행은 비이자 이익 증대 관련 영업점 이벤트를 진행했고, H은행의 경우 리테일과 기업 영업 프로모션을 단행했다.

    실적 발표를 앞두고 성과가 나지 않는 항목이 있으면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활용해 단기 수익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지난해 이미 멤버스나 ISA 가입자 유치를 위한 프로모션을 무리하게 단행하면서 은행들의 무리한 실적 경쟁 문제점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

    불필요한 KPI 항목도 너무 많아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진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계열사 시너지 강화나 디지털 금융 서비스 가입 등 실제 은행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 부분까지 모두 신경써야 하다보니 업무 범위만 무리하게 확대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최근 금융지주 체제 은행들은 대부분 계열사 협업 관련 KPI 항목 지표를 신설하고 목표 달성률을 높게 제시하고 있다. 

    은행 실적에 별다른 영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시너지 강화라는 목표 아래 증권, 카드, 보험사와의 협업을 의무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KPI를 점수화해 상대평가방식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기다보니 직원들로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입장이다.

    0.1~1점 차이로 순위가 떨어질 때마다 성과급이 달라지고 연말 승진 누락, 후선 발령, 명퇴 압박 등 점차 은행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노조는 수익과 상품신규에 집중돼있는 KPI를 개선하고 은행 경영진도 단기실적 중심 평가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각 은행들에 △KPI 평가 항목수 축소 △목표 달성 인정비율 최대 100~120%로 축소 △절대평가 방식 전환 △이벤트‧캠페인 폐지 △KPI외 별도 실적 관리 금지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금노 관계자는 "실적 경쟁에 사로잡힌 국내 은행들이 KPI 제도를 활용한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돼있다보니 장기 경영전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며 "과당경쟁 원인인 현행 KPI 제도를 손질해 직원 부담을 덜고 불완전판매나 역마진 영업을 막아 은행들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