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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압박을 견디다 못해 막다른 선택을 하는 은행 직원들이 속출하면서 은행권의 실적평가구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실적 중심의 영업 우선주의로 은행원들이 신음하는 가운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최근 A은행 모 지역영업그룹 소속 한 직원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직원이 소속된 스타팀에서 회장·행장 앞 보고를 앞두고 실적압박이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직원은 스트레스로 인해 부서 이동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공개한 고인의 생전 메모에 따르면 '지역그룹 대표와 잘 맞지 않는다', '내가 싫으면 떠나면 된다.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곳으로…' 등 지역영업그룹 대표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문구가 확인됐다.
이후 해당 은행 노조는 사측과 공동조사를 진행했다. 노조는 법인영업을 위해 올해 신설된 스타팀 조직에서 일하던 직원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운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고, 지역영업그룹 대표 등 관련자 징계와 사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노조는 "스타팀의 성과평가는 아웃바운드사업본부가, 역량평가는 지역영업그룹에서 하면서 인사평가의 이중부담 문제가 있었고, 매주 수기 실적보고·독려가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측은 인격모독과 같은 '직접적인 가해 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해당 은행은 "깊은 애도를 표하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룹 차원에서 대응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당 은행은 올해에만 5명의 직원이 업무스트레스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른 은행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4월 B은행 한 부지점장도 과도한 실적압박에 따른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해당 은행에서는 지난해 11명의 직원들이 지병과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은행 임직원의 성과와 인센티브를 평가하는 ‘핵심성과지표(KPI)'의 개선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실적압박이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점차 심해졌다고 보고 있다. 당시 외국자본이 한국에 침투하면서 은행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민영화되거나 외국자본에 팔려나갔다.
1997년 기준으로 29개였던 국내 은행은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을 거치며 현재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대구은행, BNK금융지주(부산은행, 경남은행), JB금융지주(전북은행, 광주은행), SC제일은행, 씨티은행 등 9개군으로 줄었다.
유주선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한국경제 과실을 수탈하려는 주주 자본주의 확대와 외국인 지분 증가로 수익중시 경영이 확산돼 실적경쟁이 과도화 됐다”며 “은행간 과당경쟁 체제심화와 더불어 관리자급 이상 연봉제 도입 등으로 개인별 실적 중심의 인사평가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 개선을 위해 실적중심의 개인별 평가에서 팀워크과 고객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주선 부위원장은 “현행 KPI 제도는 실적 중심에 매몰되다보니 소비자보호가 미흡한 실정이고, 직원들은 퇴근 이후에도 고객을 만나 영업하는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실적중심의 개인별 평가를 팀워크와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평가 지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공개한 국내 8개 주요은행의 KPI를 보면 소비자 보호 등 고객과 관련된 사항은 2.7%에 불과했다.
그는 “연중 상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각종 캠페인․프로모션 중단과 함께 은행 간 과당경쟁을 감시하는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도 필요하다”며 “주52시간 근무 조기 도입과 이를 위한 지문인식 기반 출퇴근 기록 시스템 구축도 대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