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일감몰아주기 근절 주문재계, 자구책 마련에 어려움 호소…“법으로 하는 것이 더 낫다”김상조 위원장, 삼성 지배구조 개편 압박… “이재용 부회장 결단 내려야”
  •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그룹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준표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그룹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준표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또 ‘강압적 재벌강령’으로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근절에 기업이 스스로 나설 것을 주문했지만, 재계는 ‘자발적’이 아닌 ‘강압적’인 재벌개혁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그룹과의 간담회 직후 해당 기업들은 관련부서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대주주 일가가 비주력 계열사나 비상장회사 주식을 보유한 경우가 많아,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대그룹들은 김 위원장이 기업 스스로 자성책 마련을 주문한 것에 대해 ‘우회적 압박’에 가깝다며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3개의 칼날을 지니고 있다. ▲조사권 ▲과징금 부과 ▲전속고발권(검찰고발권) 등이다. 이를 활용함과 동시에 관련 법령을 제정하면 대주주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원칙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데, 기업에 개선책을 마련하라는 것은 더욱 부담이 된다는 것.

한 재계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법으로 제정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르면 되지만, 대주주 일가와 기업이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라고 한 것은 앞서 지배구조 개편 및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주문한 것 보다 더욱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토로했다.

김상조 위원장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 기준이 모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대주주 일가가 핵심 및 주력 계열사 지분만 보유하고, 비주력 계열사 및 비상장회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다른 재계 관계자는 “상장과 비상장회사의 구분은 명확하지만, 주력과 비주력 계열사를 가르는 기준은 사실상 모호하다. 비주력 계열사 중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있어 대주주가 지분을 보유한 경우도 많다”며 “김상조 위원장이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회사의 자산규모를 정확하게 밝혔다면 향후 대응방안 마련이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한 10대그룹 전문경영인들이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그룹 정책간담회’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공준표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한 10대그룹 전문경영인들이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10대그룹 정책간담회’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공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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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이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해 중장기적으로 안정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현재 공정거래법상 규제로도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압박에 재계는 볼멘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압박을 이길 수 있는 기업이 재계에 없다는 것. 아울러 삼성이 재계의 맏형인 만큼 총대를 메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간담회가 끝난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아 기업들끼리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며 “삼성이 먼저 대주주 일가의 비상장 계열사 지분 등을 정리하면 다른 기업들 역시 순차적으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입장도 나타냈다. 그는 “삼성은 삼성생명을 통해 이어지는 소유지배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결정은 이재용 부회장의 몫이다. 결정이 늦어지면 삼성과 한국경제 전체에 초래되는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 4월부터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금산분리 원칙’에 막혀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정리해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리해야 하는 이슈가 남아 있다.

    김 위원장은 본인이 지난 2016년 2월 작성한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비:분석과 전망’이란 경제개혁연대 보고서를 언급했다. 이 보고서에 따라 삼성의 지배구조개 개편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보고서는 삼성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3단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부문의 금융지주사 설립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하는 비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사 설립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허용시 두 개의 지주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 설립 등이다.
     
    결국 김상조 위원장은 중간금융지주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를 추진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 재벌 특혜 논란으로 비판을 받으면서 중단된 바 있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며 “김상조 위원장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향후 계획을 짜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상조 위원장은 10대그룹 간담회에서 공정거래법을 전면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과도하게 포함돼 있는 현행 법의 형벌조항을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