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농산물 생산자물가 0.2%↑…내림세 멈추고 반등축산물 3.5%↑…달걀 10.3%↑, 8개월만 7천원대러-우전쟁 비료·사료값 급등…WB "올 식량價 37%↑"인니 "팜유수출 중단"…식용유·라면·화장품 가격인상 요인
  • ▲ 다시 금달걀.ⓒ뉴데일리DB
    ▲ 다시 금달걀.ⓒ뉴데일리DB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기름을 부으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가운데 농산물 가격 상승이 심상찮다. 당장은 기름값 상승에 가려 체감도가 덜하지만, 몇달 내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농산물값 급등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애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잠정 생산자물가지수(2015년=100)는 116.46으로 전달(114.95)보다 1.3% 상승했다. 2017년 1월(1.5%) 이후 5년2개월 만에 상승폭이 가장 크다. 3개월째 상승세다.

    공산품이 2.3% 올랐다. 그중에서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말미암아 석탄·석유제품(15.6%)이 2020년 6월(21.3%) 이후 1년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농림수산물은 전달보다 0.2% 오르는 데 그쳤다. 앞서 밥상물가를 위협하며 물가 상승을 견인했던 농림수산물은 최근엔 진정세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통계청의 3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농·축·수산물은 1년 전보다 0.4% 올랐다. 지난해 12월 7.8%, 올해 1월 6.3%, 2월 1.6%와 비교하면 오름폭은 크게 둔화했다.

    하지만 3월 생산자물가를 보면 축산물을 중심으로 농림수산물 가격이 반등했다. 지난해 12월 2.6%, 올 1월 1.8%, 2월 마이너스(-) 5.1%까지 떨어졌다가 지난달 0.2% 증가로 돌아섰다. 농산물은 지난해 12월 5.2%에서 올 2월 -7.4%까지 내렸다가 지난달 -1.3%로 내림폭이 크게 둔화했다. 농산물 가격 반등을 주도한 것은 축산물이다. 지난해 12월 -0.7%, 올 1월 -1.5%, 2월 -4.0%로 내림폭이 커지다 지난달 3.5% 급등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5.6%나 값이 뛰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가격이 치솟으며 '금(金)란'으로 불렸던 달걀의 경우 가격이 다시 뛰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설명으로는 특란 30구(1판)의 평균 소비자 판매가격은 지난 22일 현재 7010원으로 한달 전(6358원)보다 10.3% 올랐다. 8개월여 만에 다시 7000원대로 올라섰다.
  • ▲ 전통시장 한 곡물가게.ⓒ연합뉴스
    ▲ 전통시장 한 곡물가게.ⓒ연합뉴스
    농·축산물 가격이 반등한 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비룟값·사룟값이 일제히 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의 질소비료 1위, 칼륨비료 2위, 인비료 3위 수출국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해바라기씨유 무역의 53%, 밀의 27%를 담당한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올해 쌀 주산지인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량이 10%쯤(3600만t) 줄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5억명쯤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블룸버그는 비룟값 인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해만 해도 비룟값이 2∼3배 급등하면서 농민들이 비료 사용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제까지의 비룟값 상승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며 가격 급등세가 잡히지 않으면 전면적인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IRRI의 우려를 전했다.

    데이비드 맬페스 세계은행(WB) 총재도 지난 21일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최근 기록적인 수준으로 식량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수억명이 빈곤과 저영양상태에 빠지는 재앙이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B는 올해 식량 가격이 37%까지 상승할 것으로 본다.

    유엔은 지난 13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일부 국가에서 식량 수출금지 등의 무역제한에 나서면 도미노 효과로 재앙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오는 6월까지 곡물 수출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농산물 관련 수출 금지 조치는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인도네시아는 식용 팜유 수출을 오는 28일부터 금지한다고 밝혔다. 팜유는 종려 열매에서 짜낸 식물성 유지로 식용유나 라면 등 가공식품 제조는 물론 화장품, 세제, 바이오디젤 등의 원료로도 활용된다. 인도네시아산 물량이 전 세계 팜유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수출 금지 조치는 원재룟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의 수출 중단 조치 발표 직후 미국 시카고 거래소의 콩기름 거래가격은 4.5% 오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 주요 식품기업은 수개월치 비축물량이 있어 당장은 문제 될 게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원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만간 국내에서도 식량안보 문제가 이슈로 급부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 교수는 "(국제유가 급등과 달리) 당장은 국내에서 식량안보 문제가 절실하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나 몇 달이 지나면 심각하게 체감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식량안보 문제는 물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다음 달에 이뤄질 윤석열 당선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식량안보 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