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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안보①]"식용유에 밀가루까지"…'식량보호주의'에 공급쇼크

우크라 사태 밀 수확 비상…세계곳곳 가뭄에 대체수입 막막식량자원 패권경쟁…수출 중단에 亞·阿자원빈국 식량난韓, 세계7위 곡물수입국…수입단가 내달 반영, 인플레 압박

입력 2022-05-16 09:00 | 수정 2022-05-16 15:3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속화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1차 에너지 쇼크에서 2차 식량난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 가운데 국제 곡물가격도 출렁이면서 밥상물가를 위협하는 실정이다.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 물가 안정을 이유로 잇달아 수출제한 카드를 꺼내 들면서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설상가상 환율마저 고공행진을 하면서 물가 불안을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편집자 註>

▲ 밀가루 대란 오나.ⓒ연합뉴스

기름값 폭등에 이어 장바구니 물가가 불안하다. 농산물값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압박하는 '애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가루 가격이 경고음을 내는 상황이다. 지난 5일 위성 사진·지리 데이터 분석업체인 케이로스에 따르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2100만t쯤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최소 35%(1200만t) 감소한 규모다.

세계 5위의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는 옥수수 등 다른 곡물의 주요 공급국이기도 해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린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3월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의 밀과 옥수수 등 곡물 생산면적 가운데 20~30%는 수확이나 봄 파종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FAO 설명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선 올 7~8월 수확하려고 지난해 9~10월 700만㏊에 겨울밀을 심었다. 겨울작물은 우크라이나 연간 곡물 수확량의 40%쯤을 차지한다. 그러나 올해는 전쟁으로 수확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올해 수확하는 겨울밀의 49%가 러시아군에 점령됐거나 전쟁 영향을 받는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올해 전세계 밀 생산량이 7억7440만t으로 예상된다고 타전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4.4% 줄어든 규모다. 밀 생산 감소는 2018년 이후 4년만에 처음이다.

해바라기는 보통 4월에 심어 그해 9~10월 수확한다. 올해는 파종 면적이 지난해보다 35% 줄 것으로 FAO는 추산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끝나도 현지 여건상 곡물 생산이 정상화할 때까지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우크라이나의 철도와 도로, 곡물저장소 등 수출관련 기반시설들이 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선 파종부터 수확까지 생산 사이클을 재개하는데 최소 2~3년이 걸릴 거라는 견해가 나온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전쟁이 끝나도 국제 곡물시장에 전쟁의 여진이 몇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전 세계적인 가뭄으로 다른 지역의 밀 생산량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 수입선도 확보가 녹록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연합(EU) 최대 밀 수출국인 프랑스는 지난해 2000만t을 수출했으나 올해는 건조한 기후가 이어지면서 작황이 최악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총강수량이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일각에선 올해 밀 수확량이 절반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중국도 작년 가을 이례적인 홍수 여파로 겨울밀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설상가상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지난 13일 중앙정부의 허가물량을 제외한 밀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식량안보 확보를 이유로 내세웠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시장의 밀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밀 생산·유통업자들이 수출에만 집중할 경우 내수시장의 밀가루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어 정부 통제가 필요하다는 태도다.

인도는 지난 3월 121년만의 폭염에도 올해 밀 생산량이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제 밀 거래시장에선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세계 밀 수출의 29%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인도마저 수출을 금지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에는 더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4월 FAO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58.5포인트(2014~2016년 평균=100)로 1년 전보다 29.8%나 높은 수준을 보였다.

▲ 인도 밀 수확 모습.ⓒ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것은 글로벌 공급망 훼손으로 자원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한다는 점이다. 앞다퉈 비축량을 늘리고 식량 수출을 중단하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빈국에선 식량난이 가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앞서 세계 최대 팜유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8일 식용윳값이 지난해 초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팜유 수출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원재룟값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팜유는 종려 열매에서 짜낸 식물성 유지로, 식용유나 라면 등 가공식품 제조는 물론 화장품, 세제, 바이오디젤 등의 원료로 쓰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1월에는 석탄 수출을 한달간 중단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구리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자국 내수시장 안정화를 이유로 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러시아는 밀, 보리, 옥수수 등의 국내 공급 안정을 위해 다음 달 말까지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 유라시아경제연합국(EEU)에 대한 수출을 금지했다.

이집트도 3개월간 밀과 밀가루, 콩 등 주요 곡물의 수출을 중단했다. 아르헨티나는 대두유와 콩가루에 붙는 수출세를 올 연말까지 33%로 2%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수출 장벽을 높인 셈이다.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인 우리나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전체 곡물 수요량의 80%쯤을 수입에 의존해 국제 곡물가격 변동에 취약한 구조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곡물 수급 안정 사업·정책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9년 현재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1.0%, 식량자급률(식용)은 45.8%에 그친다. 2015~2019년 쌀을 제외한 밀·콩·옥수수의 95%를 수입에 의존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도화선이 된 국제 곡물가격 상승분은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반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은 수입곡물 가공업체의 우선 구매로 통상 3~7개월의 시차를 두고 수입단가에 전이된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지난달 28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올 3월 국내 밀과 옥수수, 대두 수입단가는 평년(2015~2019년)보다 43.0~59.3%, 1년전보다는 21.2~47.2% 각각 올랐다. 4월 밀가룻값은 1년전보다 16.2% 뛰었고 서울에선 냉면 한 그릇 값이 1만원을 넘는 등 곡물 수입단가 상승의 여파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아직까진 비축물량 등에 여유가 있어 단기적인 수급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5일 인도의 밀 수출금지와 관련해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2020년 기준 334만t의 밀을 수입하는데 제분용은 미국·호주·캐나다에서 전량 수입하고 사료용은 대부분 우크라이나·미국·러시아 등에서 수입한다"며 "국내 업계는 제분용 밀은 8월 초, 사료용은 10월 초까지 사용물량을 보유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농식품부는 "인도의 밀 수출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 밀 수급·가격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자급률 제고, 안정적인 해외 곡물 공급망 확보 등 중장기 대책을 적극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임정환 기자 eruca@newdaily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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