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최초…페소화 18% 절하 단행'아르헨 트럼프' 대선 예비선거 1위…시장 충격
  • ▲ 100달러짜리 미국 달러 지폐 위에 놓인 아르헨티나 페소 지폐 ⓒ연합뉴스
    ▲ 100달러짜리 미국 달러 지폐 위에 놓인 아르헨티나 페소 지폐 ⓒ연합뉴스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남미 아르헨티나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세자릿수까지 올리고 페소화를 18% 절하하는 초강수를 뒀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은 14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이날 이사회가 통화정책(기준) 금리를 21% 포인트 인상할 것을 의결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97.00%에서 118.00%로 무려 21%포인트 올랐다.

    1980∼1990년대 경제 대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아르헨티나 기준금리가 100%를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2002년 4월 30일 91.19%, 지난 6월 15일 97.00% 등 100%에 육박한 적은 있었지만, 세 자릿수까지 기록하진 않았다.

    한 번에 21% 포인트에 달하는 인상 폭 역시 2002년 6월 30일 44.74%에서 7월 31일 67.60%로 22% 포인트 넘게 올린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BCRA는 이번 조처가 환율 기대치 고정, 외환 보유 압박 완화, 아르헨티나 페소 통화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수익 등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BCRA는 또한 페소화의 공식 환율을 달러당 298.50페소에서 365.50페소로 평가 절하한다고 발표했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들은 미겔 앙헬 페스세 BCRA 총재의 발언을 인용해 이 환율이 오는 10월 대선 전후까지 고정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페소의 비공식 환율은 달러당 700페소까지 뛰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부의 '세자릿수 금리'는 상점에 물건 가격표를 붙이지 못할 정도로 천정부지로 뛰는 물가를 잡고, 정치적 변동성을 가중하는 보유외환 고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아르헨티나에선 페소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기준금리를 올리는 정책 기조가 1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지만, 여전히 물가와 환율 모두 잡지 못하고 있다.

    실제 아르헨티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올 6월 기준 115%를 넘어서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보유 외환은 국제통화기금(IMF) 부채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물가 상승세는 더 가팔라져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권 기준 생활비는 연초 대비 31% 올랐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오는 10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전날 치러진 예비선거 결과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극우 성향으로 '중앙은행 폐쇄'를 주장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 의원이 깜짝 1위를 차지하면서, 재집권을 노리는 여당으로선 물가 잡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자유의 진보' 소속 단일 후보로 나선 밀레이 의원은 앞서 지난 13일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득표율 30%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집권 중인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연합은 3위로 밀려나는 대이변이 벌어졌다. 일각에선 오랜 기간 아르헨티나를 지배한 좌파 포퓰리즘에 따른 지독한 경제난과 사회 문제에 대한 반감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밀레이는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경제학자 출신이다. 반(反)페론주의를 내세운 우파 후보로 꼽힌다. 정치·경제 이념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한 그는 무분별한 복지 등 정부 재정 지출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한편 BCRA는 "이번 정책 평가를 위해 전반적인 물가 수준과 더불어 금융·환율 시장 등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