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공시 시스템' 가동 시작… 11월 말까지 공시해야 세액공제 혜택정부 '노동개혁' 추진 본격화… 이달 중 근로시간 개편안 조사 결과 발표勞 대규모 투쟁 예고… 11월 전국노동자대회·민중총궐기, 12월 천막농성
  •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노동개혁'의 핵심 현안 중 하나인 노동조합의 회계 공시를 이달부터 시행하는 가운데 노동계는 대대적인 반발 투쟁 준비에 나섰다. 회계 공시는 노조 혐오를 조장하는 행태라며 꾸준히 반발한 노동계는 이달을 기점으로 더욱 투쟁 수위를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강경한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어 정면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5일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대한 브리핑을 열고 제도 도입 취지와 목표 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회계 공시 제도는 노조 회계 투명성에 관한 획기적인 이정표가 됨으로써 노조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미래 지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한다는 대승적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회계 공시 제도는 정부가 마련한 시스템에 회계 결산 결과를 공시하는 노조에게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다.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등을 통해 이런 규정을 마련했다. 그간 노조는 조합비를 기부금으로 인정받아 연말마다 15%의 세액공제를 받아 왔지만, 다른 기부금단체처럼 결산보고 의무가 없어 회계를 공시하지 않았다. 애초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회계 투명성 강화에 대한 중요성 등을 고려해 이달 1일로 기간을 3개월 앞당겼다.

    이에 따라 노조는 이달 1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지난해 결산 결과를 회계 공시 시스템에 공개해야 한다. 회계를 공시한 노조만이 올 10~12월에 납부한 조합비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노동포털' 내에 관련 시스템 구축을 마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조합원 수가 1000인 미만인 단위 노조나 산하조직은 공시하지 않아도 그 상급단체가 모두 공시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노동부에 따르면 1000인 이상의 규모를 갖춰 공시 대상이 되는 노조는 현재까지 700여 개로 추산된다. 총 7100여 개의 관련 조직 중 단위 노조·연합단체 등 상급단체가 400여 개, 지부·산하조직 등 하위단체가 300여 개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노동부는 제도 시행 전 해당 673곳 노조에 대한 사전 교육을 진행했지만, 이 중 84개 노조만이 참여해 참여율은 12.5%에 그쳤다. 
  • ▲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메인화면.ⓒ홈페이지 캡쳐
    ▲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메인화면.ⓒ홈페이지 캡쳐
    제도 검토를 시작했던 초기부터 노조는 격렬히 반대해 왔다. 노조를 마치 회계 비리가 있는 집단인 듯 매도해 노조 혐오를 조장한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또 법적으로도 상위 법률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위임한 바 없는 사항을 시행령을 통해 의무를 신설한 것이라며 위임 임법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부가 제도를 3개월 앞당겨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밝히자 반발은 극에 달했다.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직장인 연말정산 시즌을 앞두고 다급하게 시행 시기를 앞당긴 건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노조와 상급단체를 옥죄려는 의도"라며 "치졸하고 비열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시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노조의 자주적 운영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면서 "노조의 운영이 공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냐"고 반발했다.

    하반기 들어 다시 노동개혁의 고삐를 옥죄고 있는 정부는 노조의 반발에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 중이다. 이날 이 장관은 애초 계획보다 이른 시행에 대해 "노조 간부들의 횡령과 비리들이 계속 터지는 상황 속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 성과 중 가장 시급한 게 회계 투명성이었다"면서 "이런 중요성 측면에서 회계 공시 제도를 시급히 하게 됐다"고 역설했다. 노조가 저지른 여러가지 비리들이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이 장관은 정부가 노조를 옥죄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키워 탈퇴를 유도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고 선을 그었다. 상급단체가 공시하지 않으면 산하 조직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사실상 '연좌제'란 지적에 대해서는 "노조가 조합원을 위한 민주적인 조직이라면 당연히 상급단체가 공시를 할 것이고, 노조의 주인인 조합원들도 공시를 하도록 요청할 것"이라면서 "당당하면 투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일갈했다.

    정부는 이번 회계 공시 시스템 가동을 시작으로 올 연말까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등 주요 노동개혁 과제들을 속속 전개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앞으로 회계 공시 시스템은 노조들을 대상으로 현장 교육과 홍보 등을 강화하면서 참여를 이끌어낸다. 또 다른 주요 과제인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서는 최근 국민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마친 상태로, 이달 중 결과를 공개하면서 새 개편안의 청사진을 함께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노동계는 개혁 과제에 속도를 내는 정부를 저지하기 위해 각종 대규모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양대노총은 다음 달과 12월 중 연이어 전면 투쟁에 나서기 위해 전열을 정비 중이다. 한국노총은 다음 달 11일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10만 여명이 참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같은 날 민주노총 역시 20만 명이 운집하는 민중총궐기를 예고했다. 한국노총은 12월에는 대국회 투쟁을 열고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펼친다. 개혁과제가 점차 진전될수록 정부와 노동계 간의 대립도 첨예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