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 '못말리는 사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언론개혁은 국민적 요구다. 이는 양대 선거에서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된 언론에 대해 맞섰고 (유권자가) 그것을 지지한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지난 총선에서 신생 정당(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정당이 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현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집권 초기, 이 당 소속인 김재홍 의원이 당 언론개혁입법 운동을 주도하면서 호기롭게 밝힌 대목이다. 김 의원은 지난 2004년 방송위원회의 지상파 방송, 특히 민영방송사인 SBS의 재허가 심사 착수와 관련해서도 “방송의 사회적 책임과 공적 기능을 면밀히 검증하는 수준으로 재허가 심사가 강화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솔직히 SBS는 탄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발 더 내디딘 것은 열린우리당의 제5정조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목희 의원이었다. 이같은 집권당 내부 분위기 탓이었던가. 얼마 후 SBS는 경영진이 물러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지주회사로 기업지배구조 자체가 바뀌고 말았다.

    열린우리당의 당의장이던 신기남 의원도 언론개혁 움직임을 재촉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꽤나 해괴망측했다. 보수 신문 몇군데를 제외한 방송, 친노 인터넷 사이트, 진보·좌파 신문들을 자기네 진영에 포진시켜 놓은 채 “참여정부는 권언유착을 끊고 있다”고 자가진단 한 후 “끊으면 금단현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대로 세우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본다”고 큰소리쳤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요즈음, 민주당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정연주 KBS 전 사장의 배임혐의와 관련해 그를 해임한 정부 조치에 대해 “현 정권은 언론장악 음모를 노골화하고 있다”면서 이는 “명백한 불법이자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행위”라고 규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영방송 사수 및 방송장악 규탄 촛불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정연주 사장’을 지키겠다며 KBS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촛불시위대의 태도다. 그들은 길거리 시위를 벌일 때마다 병역의무를 수행중인 전의경들을 향해 도저히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적 언사를 퍼붓고는 했다. 전경이 아니라 ‘전견(戰犬)’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이 정연주 앞에만 서면 어떻게 돌변하는지를 보라. 본인은 물론 본인의 두 아들까지 교묘한 방법으로 병역 의무를 기피하거나 기피시킨 사람을 정의의 사도 내지 공영방송의 독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만들어버린다. KBS 문제를 떠나서 국가의 도덕과 정체성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어느 사회건 그 사회가 누려야 마땅한 자유를 저해하는 검은 세력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재권력’과 ‘개인의 방종’이다. 국민은 독재권력에 저항해야 하는 한편, 공권력은 개인의 방종을 규제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유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개인의 방종을 자유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진보·좌파 언론은 이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길거리를 점령한 채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짓밟으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정의라고 여기는 ‘도착(倒錯)’ 증세의 인간들이 늘고 있다. 그 누가 이런 사회 병리현상을 만연케 했는가.

    KBS 제작진은 특정 이념의 선전·선동뿐 아니라 자유와 방종을 도치시키는 데 앞장서온 지난 5년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당사자들이 과연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여전히 자기네의 생각이 국민 전체의 의지와 다를 바 없으며, 정부의 적법 절차에 대한 거부는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과 동의어라고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독선이라 할 것이다.

    정녕 자기네만의 언론 자유와 독립 방송을 고집하겠다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에서가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돈을 모아 사영 방송사를 만든 다음 그렇게 보도하고 제작하면 된다. KBS 제작진은 결코 국민과 동의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