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책임 걸린 일, 어설픈 사과로는 부족해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언론 자유의 한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언론 자유 확대로 신문 편집국이나 TV 방송의 보도국이 주로 맡아 왔던 의제 설정 기능의 주체가 기자에게 PD로 블로거로 인터넷 게시판 애용자로, 나아가 열심히 댓글을 다는 네티즌으로까지 다변화하고 있다. 기자 저널리즘, PD저널리즘, 블로거 저널리즘, 게시판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PD수첩과 미네르바의 공통점
'책임의 부재'
게시판, 포털, 블로그, 카페, 메신저 등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언론기관이 아니더라도 관심과 의욕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수의 대중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공론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 한마디에 가슴을 졸여야 했던 어두운 시절에 비하면 대단한 언론 자유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한 자유만큼 책임도 엄중하다는 인식이 동반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나 댓글, 게시판 등에서는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과 저작권, 사생활 침해 같은 범죄적 행위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언론의 자유보다도 언론의 책임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체포 사건도 다수 대중이 보는 공간에 글을 쓰는 사람의 책임과,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8개월여 전에 있었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공중파 방송사의 탐사보도 저널리즘이 가진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언론 자유의 한계에 대한 좋은 토론의 재료가 된다.
온 나라를 마비상태에 빠지게 했던 촛불 시위는 끝났지만,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가져온 파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MBC의 사과 방송이 있었지만, 검찰의 수사가 끝나지 않았고 제작진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보도 내용의 진실 여부도, 보도 경위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도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을 켜고 밤을 새웠던 수많은 시민은 기민당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PD수첩의 보도대로 인간광우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결론이 내려져도 두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한 차원 높은 언론 자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우리는 이 질문에 끈질기게 답을 구해야 한다.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작년 5월 초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가 "이명박 XXX, 미친 쇠고기 너나 처먹어. 만세!"라고 떠들며 놀고 있었다. 무심코 하는 소리였지만 입에 밴 말이 분명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컴퓨터 시간에 선생님이 포털에서 PD수첩 보도와 광우병 괴담을 검색하도록 하고 댓글을 달게 한다고 했다. 친구들이 그런 댓글을 달아서 배웠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들도 촛불시위에 가겠다며 야단이었다. 런던특파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광우병의 원조 발생국 영국에서 3년이나 쇠고기를 먹었던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영국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미국산 쇠고기보다 더 위험한 영국산 쇠고기를 먹인 아버지는 순식간에 '미친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지나치다 싶어 PD 수첩의 긴급 보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인터넷에서 찾아내 VOD로 시청했다. 국체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미국의 포털인 구글에 들어가 PD수첩 보도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을 상당수 찾아낼 수 있었다. 고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공중파 방송의 간판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글 검색 한번 해봤을 뿐인데
석연치 않은 대목 투성이
PD수첩이 미국내에서 발생한 최초의 인간광우병 의심 사례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20대 여성 아레사 빈슨(Aretha Vinson)을 검색했더니 뜻밖에도 위우회술(Gastric Bypass)정보 사이트가 나왔다. 빈슨이 중증 비만으로 위우회술 수술을 받은 뒤 인간광우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JD)로 숨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국에서 연간 200명 정도가 발병한다는 CJD와 광우병 쇠고기 섭취를 통해 감염되는 인간광우병은 엄연히 다른 병이다. 그래서 인간광우병은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라고 부르고 영어식 표기도 vCJD(variant CJD)로 달리한다.
CJD는 발병 후 사망에 이르는 기간이 3~6개월로 짧고, vCJD는 1년 이상으로 긴 것으로 알려졌다. CJD는 수술 도구를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빈슨이 위우회술 수술을 받았고 3개월여 만에 사망했다는 점은 그녀의 사인이 CJD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PD수첩은 이런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빈슨의 어머니가 PD수첩과 인터뷰에서 한 말은 "내 딸이 CJD로 사망했다고 한다 (The results had come in from the MRI and it appeared that our daughter could possibly have CJD)"였는데 PD수첩이 번역해 붙인 한글 자막에는 "아레사가 vCJD(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라고 돼 있었다. CJD를 vCJD로 둔갑시킨 것이었다. 유가족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모금 안내판에는 CJD라는 글씨가 선명했지만 PD수첩은 끝까지 빈슨의 사인을 vCJD로 몰아갔다. 미국 언론도 때로는 CJD와 vCJD를 혼동하고 있었다. 이는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의학 전문 기자가 아니라서 인간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 기자들의 상당수는 그러나 빈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CJD, vCJD, 뇌종양, 위우회술 후유증 등 여러 가능성으로 인해 사망원일을 특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사망원인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것은 부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알렸다. 미국 언론도, 미국 정부 당국도, 병원도, 가족들도 확신하지 못한 빈슨의 사인을 PD수첩만 vCJD로 확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방송이라 그랬다?
말실수였다면 바로 정정했어야
PD수첩은 오프닝에서 도축장에 도착해 일어나지 못하는 소(Downer)들을 모두 광우병 의심소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처참하게 학대당하는 소들의 모습을 보여 준 뒤, 진행자는 매우 심각한 어조로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 도축되기 전 그런 모습도 충격적이고……"라고 말한다. 그 충격은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구글에서 'downers, down cow'를 검색했더니 도축장에 도착해 일어서지 못하는 소, 이른바 '다우너(주저앉는 소)'가 되는 이유는 수십가지가 있었다. 목장에서 도축장까지 장거리 이동을 한 소는 영양실조, 탈수, 관절염, 탈진 등등 많은 이유로 다우너가 된다. PD수첩은 이런 정보를 무시했지만, 방송 중간에 "쓰러지는 소들이 다 광우병 소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는 정반대의 내레이션이 나와 스스로 진행자의 발언을 부인하는 장면까지 있었다. 제작 책임자는 "진행자가 말 실수를 했다. 생방송이라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고 얼버무렸지만 오히려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말실수는 얼마든지 정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방송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PD수첩은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관계자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현장책임자엑 왜(광우병 의심소를 억지로 일으켜 도살하느냐") 물었더니 관리자가 위에서 그렇게 시켰다고 하더군요. 일종의 회사방침이라고 했습니다."라는 자막을 달았다. 친절하게 "광우병 의심소를 억지로 일으켜 도살하느냐" 질문을 괄호 속에넣어줌으로써 도축장 인부들이 회사의 지시로 광우병 의심소를 마구 도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VOD로 시청한 원본 영상에는 그 어디에도 "광우병 의심소를 일으켜 억지로 도살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질문을 마치 한 것처럼 만들어 달기까지 한 것이다.
PD수첩은 또 아레사 빈슨의 주치의를 찾아가 뜬금없이 CJD와 vCJD를 MRI를 통해 구분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주치의는 그렇다고 답한다. 전문가의 발언을 통해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인간광우병(vCJD)이라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종합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문의했더니 MRI로는 CJD와 vCJD를 확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MRI와 부검 결과가 모두 있어야 사망원인을 확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의문점 등을 갖고 작년 5월 6일 PD수첩 제작진과 통화를 했다. 미국 현지 취재를 한 PD에게 육성과 자막이 왜 다른지 물었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대답이었따다. 제작 책임자와 통화에서 주저앉는 소를 모두 광우병 소라고 몰아가고, 크로아츠펠트 야콥병( CJD) 환자일 가능성이 있었던 아레사 빈슨을 미국 최초의 인간광우병(vCJD)환자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이유를 캐물었다. 제작 책임자는 일부 잘못이 있었다고 시인하면서도 "선수들끼리 왜그래"라는 이해 못할 말을 했다.
편집본과 원본 대조해보니…
확인 대신 확신으로 내보냈다
제작진과 통화 직후 PD수첩의 오류들을 지적한 기사를 작성했다. 영상 원본(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과 PD수첩이 직접 촬영하거나 가공한 영상을 대조하면서 문제점을 부각시킨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연합뉴스에서는 보도되지 못했다. PD수첩 광우병 보도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은 결국 한참이 지나고 나서 이런 내용을 전해들은 타사 기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사이에 PD수첩은 광우병에 관한 두번째 방송에서 매우 짤막하게 다우너가 다 광우병 의심소는 아니라는 점,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vCJD)이 아닌것으로 발표됐다는 점을 언급해 일부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PD수첩 제작진의 기획의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새 정부의 조급증,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취재 현장에서는 확신이 있어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지 못해 보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일 먼저 알고도
기사화 못한 안타까움 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광우병 시리즈 1탄은 유달리 문제점이 많았다. 허위 자막 하나를 달아도 큰 잘못인데 여러 개가 나왔다. 없는 말을 했다고 자막을 만들어 달기까지 했다. PD수첩은 오류 지적을 받은 뒤에 야 비로소 광우병 시리즈 2타 끝 부문에서 일부 잘못을 바로 잡았다. 번역 작가의 양심선언이 나온 뒤 해명 방송까지 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들은 남아있다. 약자인 번역 작가를 짓밟지나 않았나 의심이 든다. 사실을 면밀히 확인하고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탐사보도의 영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8개월 이상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제작진과의 대화 내용과 광우병 시리즈 2탄에서 오류 시정이 이뤄지게 된 경위까지 소개하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은 PD수첩의 오류를 제일 먼저 확인하고도 기사화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도의 언론 자유를 누리게 된 지금 이 시점에서 한 차원 높은 언론 자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유에 따르는 책임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중대한 가치이자 제도다. 그러나 거짓을 사실인 양 보도하는 언론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위 기사로 받은 퓰리처상은 취소되고, 그런 기사를 쓴 기자들은 언론계에서 쫓겨난다. 만에 하나 제작진이 기획의도를 살리기 위해 알면서도 왜곡의 유혹에 굴복했다면 언론사 자체가 문을 닫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언론의 자유에 이처럼 엄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순간 언론은 사회적 흉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PD수첩 사태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어정쩡한 MBC의 구성원들의 태도였다. PD수첩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방송 탐사보도의 전형을 만든 자랑스러운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진정으로 PD수첩을 사랑한다면, 어설픈 사과와 언론 자유 탄압이라는 구호 뒤로 몸을 숨길 것이 아니라 MBC 구성원들 스스로가 앞장서서 PD수첩 광우병 보도의 문제점을 밝혀내고 바로잡아야 한다. MBC가 못하면 전체 언론계가 나서서라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