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재정 절감 효과 없고 대형병원 수입만 증대말만 ‘시장형’…국내 제약산업 기반 ‘흔들’
  • 지난 10월 초부터 시행된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저가구매인센티브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애초 복지부는 관련업계와 국회,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험재정 안정화를 내세워 제도 실행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행 한 달여 만에 갖가지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우선 실거래가상환제 시행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국내 제약업계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인해 제네릭 보유 비율이 높은 국내 제약사간 무한 출혈경쟁을 유도, 결국 신약 보유 비율이 높은 다국적제약사의 국내시장 경쟁력만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애당초 정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실거래가상환제가 보험재정 절감에는 효과가 없고 대형병원의 수익만 증대시키는 제도라는 비판도 더해지고 있다.

     

    ◇ 건보재정 절감 효과 ‘의문’…대형병원 수입만 ↑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는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보험상한가보다 저렴하게 구매해 정부에 신고하면 그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의 시행은 의료기관인 병원과 의약품의 공급자인 제약회사에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

    즉, 병원 입장에서는 의약품을 싸게 구매할수록 제공받는 인센티브가 증가하지만, 제약회사는 약가인하로 인한 출혈경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제약사 입장에서는 병원 내 의약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 의료진의 컴퓨터 처방전에 해당 제약사의 처방코드 자체가 없어져 원내 처방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원외처방 시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복지부는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에 ‘시장형’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제약사들은 향후 지속적인 약가 인하로 매출하락이 불 보듯 뻔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의료기관의 의약품 저가구매는 매년 입찰 때마다 되풀이되기 때문에 결국 의약품 가격이 바닥을 치게 될 것이라는 게 제약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 ▲ ⓒ 최근 부산대병원의 원내 사용 의약품 입찰에서도 총 2002개 품목 가운데 54.9%인 1099개 품목이 유찰됐다.
    ▲ ⓒ 최근 부산대병원의 원내 사용 의약품 입찰에서도 총 2002개 품목 가운데 54.9%인 1099개 품목이 유찰됐다.

    이미 경희의료원을 비롯해 부산대병원, 전북대병원, 울산대병원, 경북대병원 등의 의약품 구매입찰을 통해 초저가 낙찰을 경험해 본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말한 실거래가상환제를 통한 리베이트 근절과 보험재정 절감 효과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나타난 경쟁품목들의 극심한 저가낙찰에 제약업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A제약사 관계자는 “시행 초기부터 출혈경쟁으로 치닫게 되면 상황이 악화될 것은 뻔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장을 빼앗길 수는 없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제약업계 임원은 “계속적인 약가인하 압력은 의약품 품질 하락을 초래해 결국 질 좋은 의약품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며 “결국 제약사들의 출혈경쟁으로 대형 병원의 배만 불리고 약가에 대한 건보재정과 환자 부담만 커질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은수 의원은 국세청 공시자료와 감사원의 국립대학 운영실태 보고서 등을 근거로, 이른바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들에 연간 1700억원의 인센티브가 지급될 것이라는 추산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박 의원은 “결국 시장형실거래가제가 보험재정엔 도움이 안되고 대형병원의 수익만 증대시키는 제도임이 실증적으로 확인됐다”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제도를 통해 약가를 깎아 보험재정으로 충당하지 않고 대형병원의 수익창출을 위해 쏟아 부어야 하냐”고 지적했다.

     

    ◇ 국내 제약산업 붕괴 초래…외자사만 ‘득세’
    실거래가상환제 시행이 불러일으키는 품목 경쟁은 많은 신약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제네릭 보유 비율이 높은 국내 제약사간 무한 출혈경쟁을 예고하는 것. 

  • ▲ ⓒ 최근 부산대병원의 원내 사용 의약품 입찰에서도 총 2002개 품목 가운데 54.9%인 1099개 품목이 유찰됐다.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는 결국 제네릭 위주인 국내 제약사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오리지널 신약이 많은 다국적제약사의 경우 저가입찰 경쟁이 거의 없다.

    의료기관들이 할인을 요구하는 약이라는 게 대체로 국내사가 생산하는 제네릭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시장형실거래가제도가 국내 제약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앞서 한국제약협회는 시장형실거래가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제약기업의 매출이 1조5000억원 정도 줄어들고 업계 고용 역시 최고 9400명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리베이트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도입한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가 국내 제약사의 절반 이상을 퇴출시키고, 결국 그 자리에 다국적 제약사들의 국내 시장 장악만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B제약사 관계자는 “수입의약품이라도 신약이 있는 회사는 나름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있지만, 제네릭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제약사는 사실상 의약품 시장을 포기하고 음료나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심지어 골프장 사업에 까지 뛰어든 기업도 있다”며 “현재 도입되는 각종 제도가 애초 취지와 다르게 국내업체보다는 다국적제약사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구도”라고 토로했다. 

    한편 복지부는 시장형 실거래상환제의 문제점에 대한 각계에서 빗발치는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직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어떤 대안을 제시할 지에 대해서도 사뭇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