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읽기] 도 넘어선 친노좌파 매체의 ‘감성공세’
                      모든 사안에 이상주의와 정부 비판만 반복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친노좌파 언론매체들의 무차별 ‘감성공세’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무상급식 논란, 매 맞는 교사 파문 등 근래 일어난 모든 이슈에 대해 같은 입장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팩트(fact)’보다 ‘선동’ 기능이 앞선 보도행태를 우려하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감성공세’로 반정부 투쟁동력을 키워가고 있는 대표적 언론이 바로 한겨레다. 이 신문은 23일자 친노인사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의 ‘식판의 슬픔’이라는 칼럼을 인터넷판 메인에 게재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편집제목을 ‘1명의 아이를 위해 99명 ‘부자급식’해야 하더라도...’로, ‘무상급식은 꽃봉오리같은 영혼에 생채기 나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라는 발문을 달아 소개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길 잃은 어린양’ 비유를 터무니없이 친노좌파 진영의 무상급식론에 가져다 붙인 것이다.

    "99명 부자급식해서라도 1명의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정혜신 전문의는 글 서두에서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는 착잡하고 슬프다”며 “난센스 퀴즈 같은 사지선다형 광고도 그렇지만 벌거벗은 아이에게 식판 하나 들고 서있게 한 사진 옆에 ‘전면 무상급식 때문에’라는 헤드라인을 큼지막하게 박아넣은 광고는 슬픔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예산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우선순위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저런 논쟁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집안에 시급히 치료받아야 할 심장병 환자가 있으면 모든 자원은 거기에 우선적으로 집중되는 게 상식”이라며 “내가 보기에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문제는 그런 최우선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면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다”면서 “그간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지원받아온 아이들이 느끼는 불필요한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없애주고 인간적 품위를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정신에 비유하자면, 무상급식을 받는 1명의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99명이 부자급식을 받는 상황이라 해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사회”라고 강변했다.
     물론 이 글에는 “말은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썼지만 신문에 글을 쓰는 분으로서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대안적 해결책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사회가 아이들에게 해줄 것이 급식밖에 없나” “자라나는 애들 밥 좀 편하게 먹이자는데 ‘이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채워버리니 다른 게 이해가 안 되지요. 왜 내 생각만 정의롭다고 생각하나”라며 정혜신 전문의의 주장을 비판하는 댓글도 상당수 달렸다. 학교급식 문제를 ‘시급한 심장병 환자 치료’, ‘법정신’ 문제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정 전문의의 발상에는 애초부터 이 문제의 핵심인 재원여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한겨례 “전쟁보다 햇빛 머금은 아이들의 평화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이어지는 ‘평화공세’도 친노좌파 언론 ‘감성공세’의 한축이다. 한겨레는 22일 ‘광우병 스타’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의 ‘연평도에서 들리는 망령의 초혼가’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진중권 시사블로거, 이상돈 교수처럼 비전문 영역까지 활발하게 전방위적 정부비난 글을 쓰고 있는 우 교수는 이 칼럼에서 “종교전쟁이 어리석은 것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북, 좌우 이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국이나 미국, 더 나아가 김정일, 이명박 등이 아니라 우리 민족과 나라가 평화롭게 잘사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보다는 강대국에 빌붙어 이념과 체면을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남북을 떠나 민족반역자이자 매판세력이다. 외세의 끝없는 수렁 속에 민족과 국토를 밀어 넣는 망령의 초혼가를 부르는 집단, 바로 이들이 국민 앞의 죄인”이라고 연평도 훈련을 맹비난했다.
     칼럼 곳곳에는 ‘강대국에 빌붙어’ ‘외국군대의 졸개’ ‘자주국방’ ‘민족반역자’ ‘매판세력’ 등 역시 민족감성을 자극하는 단어들로 채워졌다. 인터넷 한겨레는 20일 연평도 사격 훈련 직후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 ‘전쟁’보다, 햇빛 머금은 아이들의 ‘평화’를’이란 감성적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연평도 사격훈련이 북한의 직접적인 맞대응 없이 끝난 이후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금언들이 트위터를 타고 번져가고 있다”고 일부 온라인 여론을 감성적 언어로 전하며 평화공세를 폈다.

    경향 “남북의 배들이 자유롭게 항해하는 서해바다가 돼야…”
     경향신문은 22일 김근식 경남대 교수의 ‘무력 대 무력으론 얻을 수 없는 ‘공존과 평화’’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친북성향 학자로 꼽히는 김 교수는 연평도 사격훈련 무용론을 펴면서 “평화는 군사력에 의한 억지로 달성되는 게 결코 아니다. 무력 대 무력의 맞대응은 일시적으로 도발을 억지하겠지만 마음속 깊은 적개심을 해소시키지는 못한다”면서 “진정한 평화는 올바른 관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의 필요와 유혹을 아예 느끼지 않게 하는 정상적인 남북관계야말로 연평도의 안전과 서해바다의 평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퍼주기’로 불릴 만큼 일방적인 애정공세를 퍼부은 햇볕정책 시기에도 막지 못한 북한의 도발을, 아예 북한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황당할 정도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연평도에 무력을 증강배치하고 폭격기를 띄우고 미사일을 준비하는 서해바다는 결코 온전한 평화를 이루는 길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공동어로구역에서 남북의 어민이 함께 고기를 잡고, 개성과 해주에서 남북 근로자가 같이 일하고, 남과 북이 한강하구 모래를 걷어서 함께 나누고, 남북의 배들이 자유롭게 항해하는 서해바다라면 더 이상 연평도는 불안한 섬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공존과 평화’는 결국 북한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역시 논리가 아닌 감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신문은 23일에도 역시 친북성향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라는 연평도 사격훈련 비판 칼럼을 게재했다.

    한겨례 “체벌이라는 억압과 통제의 수단 벗어나야...”

     서울시교육청 곽노현 체제의 산물인 ‘학생 체벌 전면금지’ 이후 부쩍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교권 침해 사례 관련으로도 친노좌파 언론의 감성공세는 이어지고 있다. 소위 ‘매 맞는 교사’ 사건에 각계의 비판이 줄을 잇자 그동안 침묵하던 친노좌파 언론도 대응에 나섰지만 현실적 분석과 대안 없는 주장만 가득하다. 한겨레는 22일자 사설 ‘번지수 잘못 짚은 ‘체벌옹호론’’을 통해 체벌금지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체벌 금지 불복종’ 여론 등을 비판하면서 “수업방해나 교사 폭행이 체벌 금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자료나 증거는 없다”며 “현재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체벌 금지 탓으로 돌리고 체벌 금지 불복종까지 선언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진정 교실 붕괴나 교권 실추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좀더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실 붕괴나 교권 실추를 극복하는 길은 오히려 그 억압과 통제라는 수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며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해주며 그들의 자존감과 자율적 통제력을 길러주는 게 타율적 통제보다 더 효과적임은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그러니까 어떻게 자율적 통제력을 길러줄 수 있나.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이 부족하니까 처벌이 필요한 거 아니냐”며 답답해하는 독자들의 비판은 피하지 못했다.
     미디어오늘(‘거짓의 트라이 앵글’- 고영재, 언론인)은 “한국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화두는 ‘경쟁’이다. 경쟁을 통한 능력의 극대화, 그 거짓의 이데올로기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며 늘어만 가는 ‘매맞는 교사’ 현상을 정부 비난 소재로 연결시켰고, 미디어스는 23일 ‘체벌금지를 바라보는 조중동의 ‘헛다리’’란 제목으로 체벌금지가 교권 침해의 원인이 아니라는 비평기사를 올렸다. 공통적으로 이들 언론의 보도에서는 막연한 이상주의와 정부 비판을 제외한 현실적 대안과 방법론은 찾기 어려웠다.

    <박주연 /미디어워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