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험가’ 박정희 

     중앙일보에 실린 하버드 대학 에즈라 보겔 교수의 박정희 모델 설명이 흥미롭다. 박정희 모델은 보통 사람 같으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고위험(高危險)의 모험을 감행한 그의 독특한 리더십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 때 기회를 놓쳤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겔 교수는 보았다. 수요가 확대되고 기술이전이 가능했던 당시의 여건은 그 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의 모험은 고비용(高費用) 즉 많은 희생을 동반했다고도 했다. 

     이 설명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고른다면?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이란 대목 아닐까. 산업화의 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박정희의 산업화는 누구나 그렇게 하면 당연히 될 것이 된 것이라기보다는, “야, 어떻게 저런 베팅(betting)이 적중 했지?” 하는 아슬아슬한 ‘러시안 룰렛‘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보겔 교수는 ‘모험’이란 말을 썼다.

      ‘모험’은 <현대>의 정주영 회장의 일화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정 회장이 “이것 해” 하고 말하면 참모들이 “어렵습니다” 하고 말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 회장은 “해봤어?”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았을 일을 그는 해서 적중 했다는 이야기다.

      다른 나라에서도 군부 쿠데타도 있었고 권위주의가 있었고 근대화 의지도 있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그 한 예(例)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모험을 하지도 않았고 기회포착도 하지 못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도중에 개인적으로도 부패해 버렸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역사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어떤 일반 법칙의 소산이 아니라 한 특수한 개인의 의지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그러나 그런 특수한 사례는 언제 어느 때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건이 있고, 그 여건을 여건인 줄 알아보는 특수한 모험가가 있어야 가능한 예외적인 현상일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박정희와 한국인은 산업화의 밤 11시 차를 탔고, 12시 차를 중국의 등소평이 탄 셈이다.

      “고비용,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대목에선 우리 현대사의 고심참담한 풍상(風霜)이 새삼 상기된다.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이라 했던가?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가? 영광과 고난을 동시에 애정으로 껴안아야 할 것이다. 고비 고비마다 우리가 그 때 이렇게 고생도 했고 이렇게 이루기도 했지...하면서. 고생만 하고 이룬 것은 없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당장 북쪽만 봐도 말이다. 이제부터는 후대(後代)의 몫이다. 잘 하기를 기원해 줄밖에.

     류근일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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