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개 저축은행의 경영진단에 사상 최대 규모의 검사인력이 투입됐다. 사전 교육과 기초자료 확보 등을 마치고 11일부터 본격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이번 경영진단은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직결될 뿐 아니라 과연 금융감독당국이 `부실검사'와 `정책실패'의 오명을 씻을 수 있을지, 땅에 떨어진 권위를 되찾고 조직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과거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저항과 압력, 내부의 조직논리에 흔들려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벌써 나오고 있다. 당국은 그러나 이 같은 우려를 일축하면서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3개 기관 `338명 결사대' 출정에 담긴 의미는

    당국은 금융감독원 182명, 예금보험공사 60명, 회계법인 96명 등 338명으로 20개 검사반을 지난 5일 꾸렸다. 금감원·예보의 검사와 회계법인의 감사를 동시 다발적으로 착수한 데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됐다.

    검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9월 말 공시되는 경영실적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게 1차 목표다. 각 기관이 이중 삼중으로 점검하면서 `질의응답반'과 `순회지도반'이 검사 결과의 일관성을 확보해 어느 때보다 깐깐하게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미만으로 자체 집계된 저축은행에 미리 자구책을 내도록 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자체 집계에선 BIS 비율이 당국의 지도기준인 5%를 넘을 수 있겠지만, 검사를 통해 거품을 걷어내면 8%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상반기 검사를 받은 2개 저축은행의 경우 금감원 검사역들이 이 잡듯이 부실을 파헤쳐 BIS 비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이를 토대로 대주주의 대규모 증자를 요구해 1개 저축은행은 BIS 비율을 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경영진단이 엄격할수록 9월부터 본격화할 저축은행 구조조정 역시 정당성을 얻는다. 검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진 만큼 대주주 책임을 강력하게 물을 수 있고, 강도 높은 점검을 통과한 BIS 비율 5% 이상 저축은행에 대해선 공적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당국으로선 이번 경영진단의 성패가 조직의 앞날마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그래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사람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 수술이 필요하듯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환부를 도려내면 잠시 혼란과 고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근본적인 길이다"고 조언했다.

    ◇`공포탄'만 쏠까 우려도..당국 "속 모르는 소리"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이 된 당국의 `정책실패'와 `부실검사'가 이번 경영진단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럴싸한 `출사표'를 올렸지만, 결국엔 실컷 `공포탄'만 쏘고 돌아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와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부동산 시장을 끼고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만큼 현재로선 둘 다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정치적·경제적 부담에 가계부채 대책의 수위가 조절된 것처럼 저축은행 문제도 강력한 대응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며 "안팎의 우려, 반발, 저항에 부딪혀 강도가 약해지거나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 시장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당국의 우려, 정치권 등에 줄을 댄 저축은행의 저항,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민심을 의식한 정치인의 압력 등이 적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총리실 산하 금융감독개혁 태스크포스(TF)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하듯 검사 과정에서 당국의 조직 이기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금감원에는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선배가 검사하고 덮은 것을 후배가 잘 들추지 못하는 암묵적인 관행이 존재했다"며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당국은 그러나 외부의 이 같은 시각을 두고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경영진단에 투입된 금감원의 한 검사역은 "다른 분야에서 근무하다가 난데없이 저축은행 쪽에 차출됐다"며 "당장 내가 맡은 저축은행에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나부터 결딴난다. 이런 마당에 선배고 정치인이고 안중에도 없다"고 말했다.

    한 고위 당국자는 "너무 가혹하게 (검사)할까봐 걱정스러울 정도다"며 현장의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