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락 前총리, '쌀 의무매입' 추진했다가 과잉공급·재정 적자 초래2011년 제도 시행 후 쌀 생산·수출국 1→3위 하락 … 2022년도 2위 그쳐민주당, 18일 양곡법·농안법 본회의 직회부 강행 … 입법폭주·마이동풍농식품부 장관 "법안 시행되면 쌀 공급과잉·재정 과다 투입 우려"
  • ▲ 창고에 저장중인 벼ⓒ연합뉴스
    ▲ 창고에 저장중인 벼ⓒ연합뉴스
    태국은 2011년 기준 전세계 쌀 생산·수출국 1위였다. 2010년 주요 산업분류별 국내총생산(GDP)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0.5%였다. 이듬해 농업 종사자의 비중은 전체 노동인구의 38.4%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2011년 총선 이후 태국 정부가 '쌀 의무매입' 정책을 추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농심(農心)을 잡으면 사실상 총선 승리가 유력했던 잉락 친나왓 전 총리는 유세 기간 쌀 의무매입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당선 이후 이를 밀어붙였다. 해당 정책은 농가가 수확한 쌀을 지정 창고에 4개월여 쟁여놓았다가 이후 쌀 시장가격이 높으면 시장에 내다팔고, 낮으면 정부가 시세의 1.5배 가격에 쌀을 사들이는 사업이었다. 잉락 전 총리는 농가 소득보전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농민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었다. 잉락 전 총리는 농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2011년 8월 당선됐다.

    문제는 쌀 의무매입 제도를 시행한 이후 쌀 공급과잉이 일어났고 태국의 쌀 수출 경쟁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잉락 정부가 제도를 시행하자 2012년 쌀 생산량은 2515만t으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통상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낮아져야 하지만, 시장 상황은 달랐다. 정부가 시세보다 비싸게 쌀을 사들이자 농민들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쌀을 팔지 않고 정부가 매입하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잉락 정부는 쌀 매입 비용으로 제도가 시행된 2012년 한화로 13조3000억 원, 다음해 14조9000억 원을 지출했다. 태국 정부는 비싼 값에 쌀을 산 뒤 시장에는 시세대로 팔아야 했기 때문에 쌀을 살수록 손해였다. 태국 재무부 조사 결과 2012~2013년 쌀 의무매입에 따른 손실 규모만 총 9조5000억 원에 달했다.

    2013년 당시 태국 중앙은행 총재였던 쁘리디야톤은 '쌀 매입 제도' 폐지를 잉락 정부에 요청했다. 쁘라디야톤 전 총재는 "과거에 이 정도 큰 손실을 가져온 정부 프로젝트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잉락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 후폭풍은 급기야 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2011년 전 세계 쌀 생산·수출국 1위였던 태국은 다음해 인도와 베트남에 1,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떨어졌다. 2022년에도 태국은 쌀 수출국 2위에 머물렀다.

    잉락 전 총리는 2014년 태국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해임됐고, 2016년 태국 대법원은 잉락 전 총리에게 쌀 수매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 손실에 관한 민사소송으로 약 1조1900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 ▲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연합뉴스
    ▲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연합뉴스
    태국의 쌀 의무매입 포퓰리즘은 2024년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쌀 공급과잉과 재정 낭비,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이미 한차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양곡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안법) 등을 밀어 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8일 양곡법과 농안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정부와 여당은 양곡법과 농안법이 태국 사례처럼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지만, 야당은 마이동풍이다. 과거 잉락 정부와 비슷한 이유인 농가 쌀값 보존을 명목으로 양곡법과 농안법 시행을 추진하는 중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증가하거나 쌀값이 5~8% 떨어지면 정부가 과잉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농안법 개정안은 쌀, 과일, 채소 등 농산물 가격이 시장가의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시 정부가 생산자에 차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급하는 '가격보장제'가 핵심이다.

    정부는 연일 두 법안에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4일 양곡법과 농안법으로 인한 쌀 의무매입이 현실화하면 공급과잉 심화와 쌀값 하락의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농안법이 시행되면 영농 편의성이 높은 쌀과 기준가격이 높은 품목에 생산이 쏠려 쌀과 특정 품목의 가격하락과 재정 과다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충남 청양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도 쌀은 남는데 더 과잉될 것이고 나머지 품목은 (물량부족으로) 고물가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며 "(특정 농산물 수매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면 농식품부가 하려는 청년농 육성, 디지털 전환 등 농업 미래를 만들기가 모두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또 "전략 작물 직불제와 가루쌀 육성을 통해 식량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구상도 영향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뉴데일리DB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뉴데일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