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하이마트와 유진그룹이 결국 30일 주주총회 표 대결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양측은 그간 기관투자가들의 중재로 대화에 나서 극적 화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 측이 29일 "유진그룹이 7년간 경영권을 보장한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며 기존 논리를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양측의 분쟁은 주총 이후 법적으로 비화할 가능성마저 제기되면서 혼탁하게 치닫는 양상이다.


    ◇ "경영권 보장했다" vs "고용 보장이다" = 선 회장 편에 선 하이마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할 때 '코리아CE홀딩스'(Korea CE Holdings)와 작성한 영문 계약서를 공개했다.

    이들은 "유진그룹이 계약서에서 '모든 임직원'(Any person who is an employee of the Company)의 고용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은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이때 'employee'는 임원을 제외한 일반 직원을 뜻하기 때문에 선 회장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 때문에 'employee'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30일 주총 이후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개연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진그룹은 "이 표현은 기업 합병인수(M&A)를 하면 피인수기업의 '고용 승계'를 보장한다는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비대위는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할 때 여러 번 선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약속해 인수전에서 유리한 위치로 올라선 만큼 중요한 표현"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당시 선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졌다면 이를 별도로 표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보통 M&A를 했을 때 계약서에 나오는 'employee'에는 등기임원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통상적으로 등기임원에 대한 내용이 있다면 따로 표기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계약서가 영어로 돼 있어 당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 애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표 대결로 끝나지 않는다" = 극한의 대립을 계속해 온 양측은 28일부터 기관투자가의 중재로 대화에 나서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선 대화의 여지마저 사라져 결국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게 됐다.

    주총에서 어떤 결론이 나건 패자뿐만 아니라 승자도 극심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선 회장 측과 비대위는 이미 주총 표 대결에서 지게 되면 보유 지분을 처분하겠다고 밝혔고 선 회장을 따르는 일부 직원들은 사표를 던진 상태다.

    유진그룹도 주총에서 밀리면 회사의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하기는커녕 계열사로부터 배척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하이마트 주가는 경영권 분쟁이 세간에 알려진 23일 이전에는 9만원 대였지만 이날 7만2천100원까지 추락했다.

    선 회장 측이 이날 계약서까지 공개하며 "인수 당시 약속을 지켜라"고 항변했지만 이날 공개한 내용이 정확하게 어떤 영향을 줄지, 법적으로 유효한지 명확지 않아 양측의 갈등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당장 주총과 이사회가 열리는데 양측의 갈등은 엉킨 실타래가 더욱 엉킨 것과 같은 양상으로 악화하기만 해 행사장에서 극심한 대립이 우려된다.

    최근 중립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던 기관투자자들 등 '중도파'의 혼란도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선 회장의 하이마트 지분 15%가 원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것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30일 오전 10시 강남구 대치동 하이마트 본사에서 열리는 주총에서는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이 처리되고, 오후 6시에는 마포구 공덕동 유진기업 본사에서 선 회장의 퇴출을 결정하는 '이사 개임'안이 논의된다.

    유진그룹은 당초 이사회 장소를 하이마트 건물로 잡았으나 분쟁이 격화하자 장소를 유진기업 본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