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19개 혐의 모두 무죄"… 검찰 완패사법족쇄에 의사결정 마비… 막대한 상처만경영복귀 속도내나… 위기 극복 리더십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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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 했다ⓒ정상윤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오랫동안 옭아맸던 사법리스크가 해소됐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시작으로 햇수로 10년이다. 끊임없는 위기론 속에서도 버텨왔던 삼성의 경영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3일 오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피고인에 대한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다.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 전현직 임직원도 전원 무죄로 판단했다.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뚜렷했다. 검사의 항소 이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가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단을 내린 그대로다. 삼성 승계와 관련해서는 검찰이 10년 간 물고 늘어진 행태가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검찰의 상고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사법 리스크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에 남은 상처는 쉽게 복구하기 어려운 지경이다.글로벌 1위를 달렸던 스마트폰 사업은 애플에 밀렸고, 중국의 추격은 턱밑까지 다가왔다. 초일류를 자부했던 메모리 기술력도 경쟁사에 뒤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모두 정치권과 사정기관이 삼성과 이 회장을 향해 칼날을 겨눴던 기간에 이뤄진 일들이다.리더십 부재의 댓가는 파운드리 부문에서 더 크게 치르고 있다. 이 회장은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다. 2030년까지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하지만 검찰은 이듬해 승계 과정을 문제 삼아 또다시 이 회장을 재판에 넘겼고, 막대한 투자 계획은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파운드리 사업 부진은 시스템LSI 부문의 시행 착오로 이어졌고, 반도체 부문(DS)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다.삼성 위기론이 확대된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도 이 회장의 리더십 부재 속에서 악화일로를 달렸다. 삼성전자는 2015년 HBM을 최초 개발하고도, 2016년 시작된 사법리스크 탓에 발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AI 중심 시장으로 급속도로 변화는 와중에도 오너 리스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경영환경의 한계라는 얘기다.사법리스크는 비단 삼성 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삼성전자 그룹의 1년 매출액은 400조원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GDP의 10%가 넘는다. 코스닥 상장사의 모든 매출을 합쳐도 삼성그룹에 미치지 못한다. 삼성의 10년 위기가 한국 경제의 상당한 후퇴로 이어진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이 회장은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때보다 녹록지 않다"며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겠다"고 했다.재계는 이번 판결로 이 회장의 경영 복귀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이 2017년 그룹 컨트롤타워 미래전략실 폐지를 지시한 만큼 이번에는 스스로 경영 일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위기 속 삼성의 부활을 이끌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