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때리기 일관하더니… "어처구니 없어"경제계, 반도체법·AI법 처리 읍소는 '무시'기본소득 재검토한다면서 지역화폐법은 챙겨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당장 쥐라도 눈에 띄면 잡아먹어야 할 판국에 고양이 털 색깔이 대수인가."

    국내 한 배터리 기업 임원이 울분을 토했다. 전날 있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흑묘백묘론' 얘기다. 이 대표는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동안 밀어붙였던 반(反)기업 기조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임원은 "적어도 기업이 숨은 쉴 수 있게 한 뒤에 이념을 따지는 게 맞지 않나"며 "기업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가 이제와서 챙긴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연거푸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기차 수요 부진에 줄줄이 적자 수렁에 빠진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최근 국회만 바라보고 있다. 수천억원씩 영업손실이 나는 상황에서 믿을 건 보조금 뿐이라서다. 배터리 업계는 그동안 투자금액 일부분을 세액공제로 받아왔는데, 적자로 전환하면서 공제받을 세금이 사라졌다.

    내야 할 세금이 없으니 돌려받을 세액공제도 못받을 처지다. 정부는 세액공제를 직접 환급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국회 상임위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올해 사업계획이 불투명해진 배터리 기업들은 국회 계류안이 조속히 처리되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노란봉투법·중대재해처벌법·상법 개정안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쏟아냈다. 세계적 추세인 상속·증여·법인세 인하에는 어김없이 제동을 걸었다. 서학개미들의 염원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도 어깃장을 놓으며 혼란을 부추겼다.

    반기업 기조에 최전선에 있었던 이재명 대표는 이제와 "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며 치켜세운다.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다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고 돌아선 것도 이해하기 힘든 변화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을 재검토하겠다면서도 전국민에 살포하는 지역화폐 법안을 챙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국회 문턱을 들락거린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반도체법, 인공지능(AI) 특별법 등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경제법안을 서둘러 처리해달라며 지난 연말부터 수차례 국회를 찾았다. 이 대표를 비롯해 우원식 국회의장,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등에게 돌아가며 읍소했지만, 논의가 진척된 법안은 찾기 어렵다.

    지난해 연말 국회를 찾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국회가 무쟁점법안을 통과시켜준다면 대한민국이 정상 작동한다는 시그널이 되고, 거시지표 우려도 사라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1월 국회가 끝난 이 시점까지 민생경제법안은 국회 문턱을 여전히 넘지 못한 상태다.

    4대 경제단체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한 임원은 "국회가 이토록 기업경영에 무관심한 적은 처음"이라며 "기업들의 해외 이탈은 더욱 빨라지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경제에는 검든 희든 고양이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