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과 성공경영-뉴데일리경제 박정규] 제갈공명이 없었다면 유비는 촉나라를 세우기는 커녕, 삼국지에 이름을 올릴 위인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조조의 위나라와 국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유비의 군사는 제갈공명의 신출귀몰한 전략과 지혜로 세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책략가에서 훗날 유비의 2세까지 보필한 재상으로서 제갈공명은 세가지 두드러진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솔선수범하면서 직무에 몰두했다. 제갈공명의 또다른 장점은 공평무사한 태도였다. 공명은 신상필벌의 엄격한 자세로 나라를 이끌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들을 상대로 전쟁을 했기에 세금 부담도 무거웠을 터지만, 공평무사한 행정을 폈기 때문에 큰 불평이 없었다.

     

    세 번째로 공명은 사생활이 검소했다. 공명은 원정에 나설 때 황제인 유선에게 자신의 자산을 보고했다. 밭은 얼마, 논은 얼마라며 자산을 공개한 것이다. 그렇게 공개된 금액은 적었는데, 그가 죽은 후 남겨진 유족이 생활하는데도 빠듯한 정도였다.

     

    제갈공명은 사마중달과의 오장원 전투에서 운명하게 된다. 촉나라는 유비가 세상을 떠난 후 2대 황제에 오른 유선을 뒷받침하던 제갈공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쇠락을 예고하게 된다.

    제갈공명 사후 위나라는 한중을 빼았기고 장수 강유는 성도로 후퇴했다. 환관 황호가 간언하여 강유가 계속해서 이기고 있으니 원군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데 따른 것이었다. 위의 침입은 계속됐다. 등애, 종회의 군사가 마천령을 넘고 성도를 포위했다. 어찌할 줄을 모르던 유선에게 황호가 투항하자고 하자 곧 몸을 묶고 나가서 항복했다. 선친이 이룩한 나라를 어이없이 바치는 장면이었다.

     

    유선이 촉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것은 리더로서 우유부단했기 때문이다. 강유가 황호를 처형하자고 상주했을 때 유선은 이미 황호가 소인배임을 잘 알고 있었으나 계속 그를 총애했고,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조직력이 급속히 와해됐던 것이다.

     

    유선과 달리 오나라 손견의 황위를 계승한 2남 손권은 황하 이남의 영토를 더욱 확장하는 등 선친보다 더욱 큰 업적을 쌓았다.

     

    --오 삼국시대 역사는 오늘날 3~4세 경영시대를 열고 있는 우리 재계에 적지 않은 점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초단위로 상황이 바뀌는 글로벌 약육강식의 경쟁시대에 자칫 승계 경영에 실패한다면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3~4세 경영자 중 일부는 10여년간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오면서 상당한 파고와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많이 사라진 상태다. 그러나 또 다른 예비 총수들은 본격 경영에 나설 경우 어떤 사태를 맞을지 불안한 상황이다. 

     

    이들 중 상당수의 문제는 현장을 잘 모르고 시장을 내다보는 혜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환경에서 자라고 유학하고, 낙하산 간부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다보니 말단 현장, 시장의 움직임을 촉수로 파악하는 훈련이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자칫하다가는 냉엄한 시장에서 구석부터 둑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어이없이 기업과 함께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본인이 부족하다면 훌륭한 참모 CEO들을 중용하고 이들의 의견을 경청해 집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촉나라 유선-오나라 손권의 흥망 요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상반된 리더십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이유다.

    /박정규 뉴데일리경제 대표 skyjk@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