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피 쉽다" 대통령 호언장담, 대공황 직전 어빙 피셔의 오판 닮아 환율 효과로 부풀려진 실적, 시장 과열에도 브레이크 대신 엑셀 밟아 '빚투' 조장하고 책임은 회피, '내로남불' 정부에 멍드는 시장 신뢰 위험한 오천피 환상, '희망 고문'이 남긴 고통은 서민들에게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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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가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고원에 도달했다." 1929년 대공황 직전, 희대의 낙관론을 펼치다 명예와 재산을 모두 잃은 경제학자 어빙 피셔. 그의 오판은 100년 뒤 '오천피'에 취한 대한민국 정부에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트위터 캡쳐
    1929년 10월 15일,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는 "주가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고원(permanently high plateau)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시장은 그의 권위를 믿고 환호했고, 주가는 영원히 오를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환호가 비명이 되기까진 불과 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뉴욕 증시는 대폭락했고 대공황의 서막이 열렸다. 피셔는 재산을 모두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전문가의 오판은 개인의 파산으로 끝나지만, 국가 지도자의 오판은 국민을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100년 전 월가의 탐욕스러운 낙관론이 2026년 대한민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오천피 예찬론'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입방정'이 부른 오천피 붕괴 … 정부가 주도한 '희망 고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SNS에 "부동산 정상화는 오천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고 더 중요한 일"이라는 글을 게시햇다.  

    주식 시장을 마치 경기지사 시절 행정력으로 밀어붙이면 해결되는 토목 공사판 쯤으로 여긴, 오만이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한 술 더 떠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6000을 넘어서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시장을 자극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코스피 5000 돌파를 두고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 자화자찬하며 "6000, 7000 시대를 열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해 11월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의 "빚투는 레버리지의 일종" 망언이 크게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서 전 국민에게 '지금 안 사면 벼락 거지 된다'는 공포, 즉 '포모(FOMO)'를 주입한 셈이다.

    시장은 냉정했다. 대통령, 한국거래소, 민주당이 입방정을 떤 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꿈의 숫자라던 '오천피'는 6일 장중 힘없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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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와 '고환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

    오천피는 엄밀히 말해 '이재명노믹스'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 AI발 역대급 반도체 사이클과 고환율이 맞물린 합작품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이는 전적으로 반도체 호황을 맞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분기실적 덕분이었다.

    문제는 그마저도 '환율 착시'가 빚어낸 허상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20조 원에 달한다지만, 이는 평균 환율 1450원대의 고환율 효과가 반영된 수치다. 

    반도체 쇼티지가 반도체주의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환율이 1100원대였던 과거 호황기와 비교하면 과포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 

    정부도 환율을 애써 무시하며 코스피와 무역수지 '펌핑'을 조용히 즐기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고환율 현상을 두고 "특별한 대책이 있으면 이미 했겠죠"라며 무책임한 발언을 내놨다. 

    오천피는 자신의 '공'으로, 고환율은 시장 '탓'으로 돌리는 이중성이 드러나는 '내로남불' 대목이다. 

    ◇ 경고등 켜졌는데 '불장난' 권하는 금융당국

    더욱 심각한 건 금융당국의 직무 유기다. 시장은 이미 수차례 경고음을 내고 있었지만, 금융당국은 오천피의 찬물을 끼얹을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코스피200 선물 지수의 월봉 기준 상대강도지수(RSI)는 이달 사상 최초로 85를 돌파하며 '역사적 과매수' 국면에 진입했다.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나 2021년 유동성 랠리 때도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외국인은 이미 냄새를 맡고 탈출을 시작했다. 외국인은 지난 1월29일부터 불과 7거래일 동안 코스피 12조 4466억을 팔아치우고 있다. 

    케빈 워시 미국 연준의장 지명자에서 촉발된 46년만의 은(Silver) 대폭락도 시장이 과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였다. 

    엔진이 과열돼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계기판을 보고 속도를 줄여야 할 당국이 오히려 엑셀을 밟았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 시점에 "서학개미를 국내로 유도하겠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개별 종목의 '2배 레버리지 ETF'를 2분기에 출시하겠다고 입법 예고했다.

    시장이 꼭지일지도 모르는 시점에, 변동성이 큰 단일 종목의 2배 투기 상품을 국가가 공인해 준 꼴이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다 못해, 화약고 옆에서 불장난하라고 성냥을 쥐어주는 격이다. 

    ◇ 파티는 끝났다, 청구서는 국민에게

    어빙 피셔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역사는 그를 '대공황의 징조'로 기억한다.

    '오천피'라는 신기루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재명 정부를 보며 1929년의 망령을 떠올리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 

    분명한 것은, 정부가 조장한 거품 파티가 끝나면 그 막대한 청구서는 언제나 맨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개미들, 즉 힘없는 서민들의 몫이었다는 점이다.

    주식과 부동산 등 수많은 자산 가격은 늘어나는 통화량과 생산성 향상 덕분에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시장 논리는 차갑다. 최근 잇따른 사이드카 발동이 보여주듯 우상향 과정에서 언제든 발작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는 어찌보면 시장의 어쩔 수 없는 조정 과정이며 정부는 과도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자제하는 게 암묵적 원칙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오천피' 환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포모를 부추기는 확성기를 끄고, 투기를 조장하는 발언과 정책을 거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