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에도 홈쇼핑 4사 불법 리베이트로 무더기 적발
우월적 지위 악용한 '사익 챙기기' 비일비재
업계선 "갑을 먹이사슬 구조 고리 끊어야" 지적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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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홈쇼핑에서 촉발된 비리 혐의 수사가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에까지 확대되면서 유통 대기업의 '갑의 횡포'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검찰과 법원이 비리에 연루된 홈쇼핑업체와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엄벌해 잘못된 먹이사슬 구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7일 검찰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에서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간부는 방송출연 횟수나 황금시간대 편성 등의 대가로 납품업체 5군데에서 4년 동안 9억 원을 받았다. 식품 분야 기획자도 협력업체에게 현금뿐 아니라 승용차까지 2억 7천만 원을 챙겼다. 또 다른 임원들은 공사대금을 많이 주고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회삿돈 11억 원 이상을 가로챘다가 구속됐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수억 원이 당시 롯데홈쇼핑의 대표이사였던 신헌 사장에게 상납됐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조사 중이다.
TV홈쇼핑은 유통단계를 줄여 소비자에게 합리적 가격의 제품을 공급하고 중소기업엔 판로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1995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방송시간이 한정돼 어느 시간대에 방송되는지에 따라 매출액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로비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홈쇼핑업체는 납품업체에 매출액 30~40%를 수수료로 받고 검증이 안 된 중소기업은 42%까지 수수료를 뗀다. 이 가운데 상품기획자(MD)는 상품 선택부터 방송 시간대 편성, 방송 지속 여부까지 전권을 행사하니 납품업체들로부터 '슈퍼 갑(甲)'으로 통한다.
2년 전에도 검찰은 불법 리베이트와 수수료를 챙긴 상품기획자 등 홈쇼핑 관계자를 무더기로 적발한 바 있다. 당시 GS샵·홈앤쇼핑·현대홈쇼핑·NS홈쇼핑 등 4개사 직원들이 무더기로 사법처리됐으며, 이번 사건까지 합치면 총 6개의 홈쇼핑업체 중 5곳에서 같은 범죄가 발생해 '구조적 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여론이 악화되자 유통시장의 보이지 않는 갑의 불공정행위로 신음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홈쇼핑 납품업체 안 모씨는 "방송을 통한 매출로 살아가는 영세업자들은 홈쇼핑에 전적으로 목을 멜 수 밖에 없다"며 "어느 정도의 갑을에 대한 불합리한 상황은 수용하겠지만, 과도한 갑의 지위 남용에 대한 방지책 마련은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MD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으며 "미국의 홈쇼핑처럼 '매입'형식이 아닌 우리나라는 '판매분결제방식'을 취하고 있어, 방송 이후 판매가 저조했을 경우에도 모든 재고를 납품업체가 떠 안고 있다"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미국 바이어들과 달리 우리나라 MD들은 크게 손해보는 것이 없어 상품품질에 대해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인지도가 낮은 중소·중견 기업일수록 홈쇼핑업계 실력자들에게 로비를 벌인다"며 "대다수 납품사인 제조사들은 이들 대형유통업체들에게 만년 '을(乙)'의 위치일 뿐, 이 같은 악습은 달라질 수 없어 보인다"라고 푸념했다.
업계는 다시 한번 시장을 돌아봐야할 시점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롯데홈쇼핑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사익(私益)을 챙겼다는 지적과 함께 이번에 드러난 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TV홈쇼핑은 작년에 매출 14조5000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15조원을 넘길 정도로 매년 높은 성장세다. 홈쇼핑은 CJ·GS·현대·롯데 등 재벌 계열사 4곳이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홈쇼핑에 대한 수사를 검찰은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함께 비리 업체에 대한 영업정지 등의 강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홈쇼핑에서 오간 뒷돈은 결국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온다"며 "TV홈쇼핑 재승인권을 갖고 있는 미래부가 비리를 저지른 업체는 아예 승인을 취소하는 데까지 가야 납품 비리가 근절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갑을논쟁이 도마위에 오르며 업계 전반에 번지자 홈쇼핑업계 일부에선 "대다수 홈쇼핑 종사자들은 중소기업을 살리고 고객의 니즈에 부응한다는 사명의식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며 "검찰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업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