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타파' 의도 좋지만… '어쩌란 말이냐' 구직자 원성시중은행 "자격증 보유 여부, 당락 가르지 않아"
-
지난 4월 2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는 일명 '금융3종자격증'으로 불리는 증권투자상담사·펀드투자상담사·파생투자상담자 자격 관련 제도를 대폭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해당 자격시험을 폐지하고, 오는 2015년부터는 금융권 종사자에 한해서만 응시할 수 있는 '적격성 인증 제도'를 신설해 대체한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이 발표되면서, 금융권 취업을 위해 준비 중인 수험생들은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이들은 "금융권 취업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자격 제도를 갑자기 폐지하면, 앞으로 어떻게 취업을 준비하란 말이냐"며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 금융자격증 폐지… 취준생 '어쩌란 말이냐'
금융권 취업을 준비 중인 조형빈(가명·27·중앙대 재학) 씨는 기자에게 "그야말로 멘붕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조 씨는 "다른 남학생들보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 이제 갓 전역했고, 오랜 고민 끝에 금융권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금융자격증 취득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차근차근 갖추려는 중에 별안간 폐지 소식이 들리니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했다.
하반기 은행 공채에 응시할 예정이라는 정인영(가명·24·여·경기대 졸업) 씨는 "'3종 자격증' 증 펀드투자상담사는 취득했으나, 나머지 2개는 아직 취득하지 못했다"며 "올해 안에 나머지 2개 자격증을 모두 취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커진다. 하나만 갖고 있을 경우, 3개 모두 갖고 있는 경쟁자들에 비해 아무래도 불리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정 씨는 "불안한 마음에 관련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지만, 나오는 결과는 '우리 학원에 등록하라'는 광고성 게시물 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기자가 검색 사이트에서 '금융3종 자격증 폐지' 등의 검색어로 검색해 본 결과, "금융자격증이 폐지되니 우리 교육기관에서 수강하라"는 내용의 홍보성 게시물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일부 언론매체에서도 이런 내용의 홍보성 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한 상태였다.
◇ 사회 비용 절약·스펙 타파, 의도는 좋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는 지난달 24일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금융자격제도를 폐지하고, 금융권 내에서도 해당 업무에 실제로 종사하는 사람만 취득할 수 있는 적격성 인증 제도를 대체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 기관은 "과도한 스펙 쌓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아끼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3가지 자격증 취득자 중, 현업 종사자의 비중이 매해 줄어들고 있고, 금융권에 취업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 상당수가 해당 자격증 취득을 위해 사교육비 등 여러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사회적 비용의 낭비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금융위 자본시장과 관계자는 "시험 합격 후 금융회사에 취업하지 않은 인력들이 투입한 노력과 비용은 결국 사회적 낭비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금융자격증 폐지는 '스펙 위주의 채용' 관행 철폐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금융위는 지난달 3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스펙' 대신 '실력과 창의성' 중심의 채용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채용관행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공공기관의 채용제도 개선 노력이 민간 금융회사 등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구체적 내용과 성과에 대한 홍보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취업준비생에게는 이런 말들이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은 채,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조형빈 씨는 "실력 위주, 창의성 위주… 좋은 말이긴 한데, 그걸 객관적으로 어떻게 측정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금융자격증이나 어학 점수 등은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면 되지만, 실력이나 창의성 등의 말들은 실체가 없는 '뜬 구름 잡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3종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금융투자협회는 "탈(脫) 스펙을 요구하는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를 뿐"이라는 입장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금융위가 금융자격증제도를 개편하겠다니, 우리로선 그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구직자들이 준비할 수 있는 대체 제도 등을 마련하지 않은 채 기존 제도를 무작정 폐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금융위원회는 구직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뉴데일리경제>는 여러 차례 금융위 담당자에게 금융권 취업준비생의 고충과 대체 제도에 마련에 대해 문의했으나, "담당 사무관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는 답변 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 시중은행 "금융자격증 유무, 당락에 영향 없어"
취업준비생들의 우려와 관련, 시중은행 담당자들을 취재한 결과 "금융3종 자격증이 취업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국민은행 측은 "금융3종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해서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융 자격증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업무 능력이나 인성 등이 비자격자에 비해 우월하다고 판단하진 않는다"며 "특히 최근엔 인성을 위주로 보는 면접 실시로 당락을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역시 "금융 자격증 보유 여부가 당락을 가르진 않는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열린 채용'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자격자라는 이유로 서류전형을 탈락 시키지 않는다. 면접의 경우 대상자의 인적사항을 비공개로 한 채 진행하는 '블라인드 면접'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면접관이 취업준비생의 자격증 보유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락이 갈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올 하반기 실시 예정인 대졸 공채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시중은행은 이처럼 "금융자격증 유무보다는 면접 등을 통해 인성을 평가한 후, 이를 중점적으로 당락 여부에 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선 두루뭉술한 개념인 탓에 구직자들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