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외환...경상수지흑자·외국인투자 ↑
수출 '빨간불'...성장 잠재력 저하가 더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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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절없이 환율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12일 원-달러 환율은 1017원대로 연초에 비해 40원 가까이 떨어졌다.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98원대를 기록했다.

     

    전일보다는 소폭 오른 수준이지만 달러화 환율은 최근 6년 사이 가장 낮은 기록이고 엔화 환율은 이미 1000원대가 붕괴됐다.

     

    기업들의 예상 방어선 1050원은 무너진지 오래이고 1차 저지선이라도 1020원도 지키지 못했다.

     

    1010원대 마저 위협받는 이대로라면 연내 900원대의 세자릿수 진입이 점쳐진다.

     

    2008년 4월28일 종가 996.6원 이후 막을 내린 세자릿수 시대가 6년여만에 다시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기업의 수출 채산성을 보자면 환율의 하락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만 대내외 여건상 원화 강세의 큰 흐름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넘쳐나는 외환...경상수지흑자·외국인투자 ↑

     

    최근의 원화 강세 기조의 배경에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있다.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외환을 끊임없이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707억3천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전망치는 680억달러, 내년에도 580억달러다. 연간 60조~70조원의 돈이 달러화로 계속 들어오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한국이 새로운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받게 되면서 외국인 투자자금도 국내 증권시장과 채권시장에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 등이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고환율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주요 요인이다.

     

    선진국의 환율전쟁 틈새속에 원화만이 나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100엔당 원화 값은 이미 1000원 선이 깨져 5년 9개월 만에 최고수준이 됐고 위안화 대비 원화 값도 연초 이후 6% 이상 올랐다.

     

    '1달러=900원대, 100엔=900원대'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 ◇수출 '빨간불'...성장 잠재력 저하가 더 큰 문제

     

    달러화와 엔화 환율이 동반 약세를 기록하면서 국내 산업계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훼손되고 환차손으로 인한 손해가 늘어나면서 영업이익이 줄게 돼 수익성에 타격이 미치기 때문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기업도 헉헉대는 수준의 환율에 세월호 쇼크에 묻혀 있지만 이미 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고사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공장 신·증설은 주로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 자연스레 좋은 일자리가 빠져나가고 성장잠재력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수출 감소보다 성장 잠재력의 저하"라고 말하고 있다.

     

    엔고가 빚었던 일본기업들의 해외 이전과 장기 침체가 우리나라에서 되풀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기업과 수출기업만 먹여살린다는 싸늘한 여론을 의식해 입을 닫고 있다.

     

    대신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한국 경제 환경에서는 환율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부분"이라며 "1000원선이 무너질 경우 우리 경제의 큰 고비였던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 개입 제한적...경기체력이 관건

     

    환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환율하락을 인위적으로 틀어막는 대신 속도 조절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쏠림만 우려할 뿐 적극 개입은 자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입을 하더라도 환율 하락은 커다란 흐름이고 정부가 흐름을 바꿀 정도로 개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이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을 차질없이 진행해 내수를 끌어올리는 등 근본적으로 환율이 올라갈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근원 처방이라는 얘기다.

     

    물가상승이나 내수시장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금은 수출과 내수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스탠스가 달라졌다.

     

    경상수지 흑자 상황에서 무리한 개입을 하면 미국 등의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인 '1달러=1천원'에 다다를 경우 당국의 개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천원의 붕괴는 수출경쟁력 약화와 관광수지 적자 확대로 오히려 내수 경기에 더 큰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달러와 원·엔 환율이 연평균 1천원을 기록할 경우 국내 총수출이 전년 대비 7.5%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추세적 환율하락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글로벌 달러 약세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글로벌 IB들은 속속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와 모건스탠리 등 IB들은 올 연말 전망치를 1천원~975원까지 대폭 내렸다.

     

    글로벌 환율 전쟁속에 다시금 도래할 세자릿수 환율시대.

     

    한국의 경기체력이 환율변동을 딛고 더욱 튼실해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