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퇴진·인격 모독·노조 탄압·합병 반대…'각양각색'"처우 개선 요구 시위와 달라… 경영진 투명 경영 노력해야"
  • ▲ 국민은행 1·3노조의 '관피아 척결' 시위에 참가한 국민은행 직원들. ⓒ 유상석 기자
    ▲ 국민은행 1·3노조의 '관피아 척결' 시위에 참가한 국민은행 직원들. ⓒ 유상석 기자

    무더위와 가뭄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각 금융사의 노·사간 대립 역시 여름 날씨 만큼이나 뜨거워지고 있다.

KB금융에서는 국민은행과 KB신용정보 노조가, 하나금융에서는 외환은행과 하나SK카드 노조가 각각 회사를 상대로 날을 세우고 있다.

노조들이 여름철 회사를 상태로 소위 '하투(夏鬪 : 여름 투쟁)'를 벌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투쟁은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이 아닌 '다른 것'을 요구하는 싸움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점을 보이고 있다.

<뉴데일리경제>가 각 노조들이 회사와 싸우는 다양한 사연을 정리해 봤다.

  • ▲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조위원장(악수하는 좌측 인물)이 윤영대 제3노조 위원장(악수하는 우측 인물)과 시위 현장에서 만나 "힘을 합치자"고 다짐하는 모습. ⓒ 유상석 기자
    ▲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조위원장(악수하는 좌측 인물)이 윤영대 제3노조 위원장(악수하는 우측 인물)과 시위 현장에서 만나 "힘을 합치자"고 다짐하는 모습. ⓒ 유상석 기자

  • ◇ 국민銀 노조 "관피아 낙하산 척결!"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은행 노조는 두 수장을 겨냥한 집회를 열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제1노조)와 KB국민은행노동조합(제3노조)는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서여의도본점 앞에서 '관피아(관료와 마피아를 합친 단어로, 관료 출신 금융권 CEO를 마피아에 빗대 일컫는 말) 낙하산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성낙조 제1노조 위원장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은 KB를 본인들의 부를 축적하는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두 경영진은 자진 사퇴하라. 퇴진하지 않을 시 출근저지 등 모든 수단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윤영대 제3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적폐가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며 "부정과 무소신의 전형인 낙하산과 그 추종자들을 걷어내는 일에 KB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두 노조 간부들은 "이 자리에서만큼은 서로를 공격하지 말자"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평소 제3노조 측은 제1노조를 어용노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KB신용정보 노조 "우리 사장님 좀 말려주세요"

    KB금융의 다른 계열사인 KB신용정보 노조는 장유환 사장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다. 장 사장의 계속 되는 인격 모독에 더는 못 참겠다는 주장이다.

    KB신용정보 노조는 "장유환 사장은 겉으로는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직원에게 욕설과 인격모독을 일삼고 있다"며 "이로 인해 직원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고 지난 14일 주장했다.

    이종진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KB신용정보지부(KB신용정보 노조) 위원장은 "욕설은 기본이고, 이 업무에 20년 이상 종사해 잔뼈가 굵은 임원에게 '박사인 내가 더 잘 알지, 네가 뭘 아느냐'며 무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50대의 임원을 불러놓고 '잘못했습니다'를 복창시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 위원장은 "장 사장이 곧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그가 연임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막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 사장의 임기는 오는 17일 만료되며, 다음 날인 18일 이사회를 통해 새 사장이 선임된다. 장 사장의 연임 가능성도 현재까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논란과 관련, 장 사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임직원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흥분하면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긴 하지만, 인격 모독은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장 사장은 "실적을 높이는 데 힘을 쏟다보니 구성원, 특히 지점 근무 직원들과의 소통이 다소 부족했다"며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나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KB신용정보 노조는 현재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노조 측은 "이사회가 열리는 날까지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하나SK 노조 "회사가 노조 탄압… 당장 중지해야"

    하나금융의 계열사인 하나SK카드 노조 역시 서울 을지로 하나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회사 측이 하나SK카드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동훈 하나SK카드 노조위원장은 본지 기자와 만나 "하나SK카드 노조원들이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고초를 겪고 있다"고 15일 말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상당수의 하나SK카드 노조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은 돼 있지만, 실제 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 사측이 노조활동을 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노조 탄압의 배경에 자회사인 하나SK카드 외에 모회사인 하나금융의 영향도 미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그래서 카드사가 아닌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외환銀 노조 "합의 깬 통합 논의 절대 안 돼"

    하나·외환은행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통합 대상이 된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외환은행 노조는 지난 9일 2·17 합의서 위반행위를 중단시켜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한데 이어 12일에는 서울역 광장에 노조원 5000여명이 모여 외환은행 사수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2·17 합의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의미한다.

    김근용 노조위원장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끝없이 합의를 위반하더니 결국 합의서 전체를 부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대형 금융사의 대표를 할 수 있느냐, 김 회장은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조기통합이 필요하다는 회사측의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하나지주에 인수된 후 외환은행에 돌아온 것은 2조원 자산 강탈이었다"며 "신규대출과 영업점 증설 억제 등 하나지주의 경영간섭만 중단되면 외환은행은 2년 전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은행의 통합은 노·사 간의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지난 7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답변을 통해 "당연히 노조와의 합의를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힌다. 합병을 하려면 금융위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하나금융이 노조와 합의를 하지 못하면 통합 자체가 성사될 수 없다.

    ◇ "월급 올린다고 해결 안 돼… 투명 경영 노력해야"

    금융권에서 최근 잇따르는 노·사 갈등은 여느 '하투'와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여름에 보통 벌어지는 쟁의가 임금인상·고용안정 등 처우개선만을 요구했다면, 이번 갈등은 '관피아' 척결·인격모독 중지·노조 탄압 중지·통합 중지 등 각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다른 요구를 하고 있는 '각개전투' 양상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금융사가 처한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노조에서 단순한 처우 개선 요구 외에 다른 목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며 "임금을 인상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투명한 경영을 위해 경영진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특히 노조 탄압이나 인격 모독 등의 문제가 개인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아닌 굴지의 금융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