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 아니라면 진위여부 2중 확인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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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A] 어느 날 제 카드로 현금서비스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누군가 제 공무원증을 위조해 제 명의의 계좌를 개설한 후, 어떻게 알아냈는지 제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이용해 ARS를 통해 현금서비스를 신청하고, 그 금액을 명의도용 계좌에 입금하게 한 후, 현금지급기에서 인출한 것입니다.

    범인은 현금서비스 최대 한도액을 모두 끌어쓴 상태였습니다. 결국 저는 돈 한 푼 쓰지 못한 채, 타인이 쓴 수백만원을 카드사에 변제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B은행이 계좌 개설 시 본인확인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증을 요구해서 계좌 개설을 요구하는 사람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 타 신분증에 비해 드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본인 확인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본인 확인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B은행이 피해액 전액을 배상하길 원합니다.


    [B 은행] 계좌 개설 당시 저희 은행은 신분증 요구했고, 사진이 첨부된 공무원증을 받았습니다. 확인 결과 신분증 상의 사진과 이를 제시한 사람의 외모가 육안상 일치했습니다.

    이 경우 저희 입장에선 신분증 상의 인물과 이를 제출한 인물이 동일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했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해설] 민법의 일반원칙에 따르면 은행은 예금주 본인 또는 대리인에게 예금액을 지급하면 정당한 변제가 되며, 예금채권(예금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해당 금액의 범위 내에서 소멸됩니다.

    문제는 정당한 권리자가 아닌 자에게 지급했을 경우인데, 이 경우에도 사회일반의 거래관념상 ‘정당한 권리자라고 믿을 만한 외관을 구비한 자’에게 정당하지 못했음을 몰랐고, 과실 없이 지급한 경우에는 유효하다고 민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말이라 술자리에 들러 술을 마신 후, 귀가를 위해 대리운전기사를 부릅니다. 그런데 해당 업체 소속이 아닌데도 누군가 나타나 그 업체 이름을 대며 집까지 데려다준 후 이용요금을 청구합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그를 믿고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겠죠. 나중에 대리업체 또는 진짜 소속 기사가 요금 요구해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B은행의 예금지급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일텐데요. 이 경우 대법원 판례는 은행의 책임을 엄격하게 보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거래 명의인의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신분증의 진위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만일 실제로 거래한 상대방이 신분증상의 본인과 다른 사람임이 사후에 밝혀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융기관에게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1998.11.10., 98다20059)입니다.

    금융감독원의 입장도 같은 취지입니다. “예금계좌 신규개설시 개설인이 주민등록증이 아닌 신분증을 제시한다면, 금융기관은 재직증명서나 의료보험증 등 본인만이 소지할 수 있는 성격의 2차 증빙자료를 청구해 본인여부를 2중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2005.9.13., 조정번호 제2005-61호)입니다. 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B은행의 업무처리는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B은행은 A씨가 입은 손해액 전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